재계의 상법개정 반발과 그 허상

채이배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공인회계사   작성일시: 작성일2013-08-22   

최근 법무부가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이에 대해 재계가 경영권 위협, 투자와 고용 저해 등을 주장하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재계가 가장 반발하는 것이 감사위원의 분리선출이다. 현행법상 일반 상장회사는 감사를,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규모 상장회사는 감사위원을 두어야 한다. 감사 등은 대주주 및 경영진을 독립적인 위치에서 감독해야 하므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까지만 허용하여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이 선임되도록 해왔다. 특히 감사위원은 이사와 겸직하지만 이사와 따로 뽑아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그런데 2009년 상법이 개정되면서 이사와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던 것이 일괄선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감사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사로 뽑혀야 하고, 이사 선임투표에서는 대주주의 의결권은 제한되지 않다보니 감사위원이 독립적인 사람으로 선임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이를 원상회복하여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자는 취지다. 여전히 재벌 총수들은 횡령·배임과 조세 포탈, 일감 몰아주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과의 불공정한 거래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있다. 이번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비롯한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 등이 함께 도입된다면 재벌 총수들에 대한 실질적인 견제장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재계는 입법예고안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감사위원 선임에서 외국계 펀드들이 후보를 내 이사회를 장악하여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외국계 펀드는 특정 기업의 경영권을 노리는 기업 인수합병(M&A)펀드라기보다는 주식투자로 배당이익이나 시세차익을 얻고자 하는 뮤추얼펀드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적대적인 인수합병은 주가가 낮은 회사를 대상으로 삼아 대주주보다 지분을 더 확보한 뒤에, 장기간 기업을 경영하면서 투자이익을 회수하는데,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 중에서 지분구조가 취약하거나 시가총액이 낮아 적대적인 인수합병의 목표가 될 만한 회사는 없다. 또 국적을 불문하고 펀드가 이사 한 명을 선임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재계가 주주의 경영 참여 시도조차 경영권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한 자기방어이다. 결국 재벌 총수에게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경영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인데, 견제받지 않는 현재의 재벌의 모습을 본다면 재계가 참으로 낯이 두껍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또 재계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금을 쌓아두거나 자사주 매입 등에 자금을 사용하여 투자와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계가 투자와 고용을 무기로 삼아 경영권 안정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논리이다. 기업은 수익률이 높은 사업을 찾아 투자하여 기업가치와 주가를 올려야 할 것인데,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를 포기한다면 주가는 떨어지고, 이는 기업가치를 저해해 인수합병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재계는 현재도 경영권이 불안하여 현금을 쌓아 놓고도 투자, 고용을 못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최근 투자와 고용의 저조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확대나 내수 부족 등의 이유 때문이지 경영권 위협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재계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나올 때마다 경영권 위협과 투자 및 고용을 빌미로 들어 개혁을 좌절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법안이 제대로 마련되어야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시장경제 질서가 바로잡히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경제의 신성장동력이 살아나 투자도 늘고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정부·국회 모두 재계의 주장에 현혹되지 말고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경제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 8월 2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