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한 돈에서 맑은 방송이 나올까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3-08-14   

언론단체들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법정투쟁을 벌인 결과 ‘종편·보도 채널 사업자 승인’ 관련 자료들이 공개됐고, 내가 그 검증팀의 좌장 역할을 맡았다. 방송산업에 관해서는 문외한임에도, 사업자들의 재무상태와 그 주주 구성에 관한 분석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려 12만쪽이나 되는 자료들을 처음 봤을 때는 모질지 못했던 내 마음을 자책하기도 했지만, 자료를 분석하고 보고서 초안을 쓸 때쯤에는 이 일을 맡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추한 한 단면을 드러내고 나아가 개선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분석 내용 몇 가지만 요약한다.


첫째, 주주 구성의 적절성과 관련한 방통위 심사규정의 맹점이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왔다. 현행 방송법상 최대주주와 외국인 주주에 대해서는 소유한도 규제가 있는데, 이때는 계열사를 비롯한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을 모두 합친 것을 기준으로 한다. 당연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외에 방통위가 정한 세부심사 항목에서는 개별 주주만을 단위로 심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결과 비교적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주요주주에서 빠져나가 사실상 아무런 심사를 받지 않는 기타주주로 분류되도록 하는 온갖 편법들이 난무했다. 그룹의 여러 계열사가 나누어서 출자하는 ‘출자 쪼개기’가 그 대표적인 예다. JTBC(중앙일보)에 출자를 약정한 한국컴퓨터그룹의 경우 5개 계열사가 50억원씩 총 250억원을 약정했다. 이는 공동 2대주주에 해당하는 금액이나, 어느 한 계열사도 주요주주로 지정되지 않았다. 사실상 2대 주주가 아예 심사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 방통위는 뭘 심사한 걸까?


둘째, 승인 신청 당시(2010년 12월)에 출자를 약정한 주주들과 승인장 교부 당시(2011년 3~4월)에 실제 출자를 한 주주들이 너무 달랐다. 가처분소송을 내면서까지 자료 공개를 거부한 MBN(매일경제)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종편의 경우, 약정한 법인주주 중 43%가 출자금액을 변경하거나 아예 철회했다. 특히 채널A(동아일보)의 경우에는 이 비율이 57%에 달한다. 비유하자면, TV 홈쇼핑에서 물건을 샀는데, 주문한 상품과 배달된 상품이 다른 것이다. 이 역시 주요주주가 아니면 출자내역을 심사하지 않는 방통위 규정의 허점을 십분 이용한 결과다. 추측하건대, 승인 신청을 할 때는 아무나 붙들고 ‘서류에 이름만 올려 달라’고 했다가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에야 실제로 돈을 낼 기업들을 찾아 나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방통위는 가짜 서류를 보고 심사를 한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눈감아 주기로 한 건가?


셋째, 투명성과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방송사의 주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업들이 너무 많이 들어왔다. 학교법인을 비롯한 비영리재단들이 수익성과 환금성이 보장되지 않는 종편사업자의 비상장 주식에 투자한 이유는 뭔가? 특히 사돈기업인 TV조선(조선일보)에 50억원을 출자한 고운학원(수원대)은 등록금 반환소송을 낸 학생들에게 뭐라고 해명할지 정말 궁금하다. 업종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봉착한 저축은행들, 잠재적 부실 상태의 건설회사들, 소비자와는 접촉이 없는 자동차부품회사들이 대거 출자한 것 역시 경제적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편 승인 신청 당시부터 참여한 한진·부영·한국투자금융그룹과 승인장 교부 시점에서 신규 참여한 현대중공업·현대·효성·코오롱·대성그룹 등 대기업집단들은 방송사 주주로서 무슨 이익을 기대한 걸까?


마지막으로, 채널A가 너무 무리했다. 애초 출자를 약정한 기업들이 대거 빠져나가자, 근원을 알 수 없는 돈들로 그 자리를 메웠다. 주요주주 요건에 0.02% 모자라는 203억원의 거액을 출자한 E&T는 그 자금 원천이 의심스럽고, 100억원과 60억원을 각각 출자한 리앤장실업과 고월은 배임·횡령죄로 수감된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과 관련된 회사들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재벌 돈, 금융회사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간 곳도 채널A다. 특히 한화생명의 신탁을 이용해 간접 출자함으로써 자신의 명의를 숨기려 한 하나은행·하나대투증권·국민은행 등은 금융회사로서의 기본 원칙을 위배했다. 채널A는 이런 구린내 나는 돈들의 출처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안식년을 다녀온 지 이제 딱 1년 지났다. 그동안 종편 측으로부터 여러 번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아직까지는 사양 중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단지 뭔가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보고서를 쓰면서 그 이유가 보다 분명해졌다. 내 말을 담아줄 그릇이 좀 더 투명해지기를 바라는 알량한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올해 말 방통위의 종편 재승인 과정에서 기존 심사규정의 허점을 보완해 엄격하게 심사하고, 정기국회의 국정감사에서 여러 의혹들을 말끔히 해소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종편에도 기꺼이 출연하겠다.


* 이 글은 경향신문 8월 14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