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경제성적, 평균 B에 금융은 D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3-07-03   

시민단체 책임자로서 가장 힘든 일이 기자들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다. 모범답안만 말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일 질색인 것이 대통령의 경제정책 성적을 매겨달라는 주문이다. 그것도 A, B, C, D, F로…. 이런 선정적 기사 쓰지 말라고 호통(?)을 치기도 하지만, 그래봐야 물러서는 기자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한다. 물론 주관식 답안지 채점 결과는 그 순간 내 기분이 어떠냐에 따라 갈팡질팡한다. 교수의 영업기밀이다.


어쨌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는? 요즘 내 기분 상태로는 평균 B학점 정도 되겠다. 의외로 후하다고? 함량미달의 경제부총리와 장관·수석들을 임명하고 ‘경제민주화 과잉입법’론을 꺼낸 것만 생각하면 당장 F를 주고 싶지만, 상대평가 잣대 때문에 성적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교수의 영업기밀 중 하나다. 다른 학생들, 즉 민주당 등 야당들이 워낙 죽을 쑤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몽땅 F를 주면, 다음 학기 강의실에 파리 날린다.


6월 임시국회를 돌이켜보자. 경제민주화와 민생 입법의 분수령이 될 거라 했는데, 역시 결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안면몰수하고 입법저지 로비에 나선 전경련과 의지박약 본색을 드러낸 새누리당의 합작품이지만, 그거야 익히 예상한 바다. 진짜 내 기분을 꿀꿀하게 만든 것은 민주당의 지리멸렬함이다. 6월 국회를 시작할 즈음엔 ‘을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맞아, 그게 정답이야.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다. 입법은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더구나 상대방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 차원에서 그 수많은 법안들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각 상임위별·의원별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 아닌가. 단연코, 없었다. 내가 본 것은, 되지도 않을 법안 들고 혼자 목소리 높이는 ‘탈레반’, 이미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 놓고 뒤늦게 선명성 경쟁하는 ‘떴다방’, 그리고 법사위·본회의 앞에서 브레이크 걸고 패키지 협상하는 ‘알박기’뿐이다. 국정원·북방한계선(NLL) 건이 아무리 중차대하다 해도 최소한의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후퇴의 주범이 아니라, 국회에 발목 잡힌 피해자로 인식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편, 경제정책 전체에 대해서는 평균 B학점을 주기는 했지만, 세부 과목별로는 성적이 들쭉날쭉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금융 과목은 낙제 점수에 근접한다. 과거와 비교할 때 박근혜 정부의 가장 특이한 점은 금융정책의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렸다는 것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금융정책이 국정의 중심에 떠오른 적이 없다. 140개 국정과제 중에서는 ‘국민행복기금’이 유일하다고 할 정도다. 그러니 대통령이 금융을 홀대한다면서 “금융위기가 다시 터져야 우리의 진가를 알 텐데…”라는 농담 같은 진담이 금융관료들(모피아)의 입에서 새어 나온다.


그러나, 모피아가 누군가. 아무리 홀대를 받아도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우선, KB금융·NH농협 등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부터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논란이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모피아의 세상이 되었다. 조원동 경제수석의 “좋은 관치도 있다”는 발언이 그들만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보여주었다.


또한 정책에서는 ‘뭔가 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리고 책임도 지지 않는’ 놀라운 신공을 펼치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금융감독체계 선진화·우리금융 민영화·정책금융기관 재편 등 4개 핵심 과제별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렸고, 최근 그 보고서들이 잇달아 발표되었지만, 긍정적인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애당초 TF 위원 구성부터 제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만 채웠으니, 모피아의 아성에 도전하는 아이디어가 나올 리 없다.

그나마 모피아의 인사 싹쓸이 문제와 허울뿐인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립안에 대해서는 뒤늦게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걸었다. 이런 사후약방문조차 없었다면 박 대통령의 금융과목 성적은 영락없는 F였을 것이다. 금융은 결국 사람의 문제다. 대통령이 금융을 홀대하는 건지 금융에 무지한 건지 알 수 없으나, 그 사각지대를 모피아가 잠식해 들어가는 것을 방치하고서는 결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


금융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버냉키 쇼크’로 어수선하던 지지난 주말 모피아가 내놓은 대책을 보라.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건전하다고 주장하면서 시장의 과민반응에는 관치로 대응하겠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내용이 없다. 2008년의 모습과 어찌 이리도 똑같은가. 진짜 금융위기를 자초해서라도 자신들의 진가를 입증할 심산인 모양이다. 그러면 민주당이 아무리 개판 쳐도 박근혜 대통령의 성적은 F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모피아를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그러려면 주변의 사람부터 제대로 써라.



* 이 글은 경향신문 7월 3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