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남의 정보를 원하거든…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3-04-10   

국세청이 요즘처럼 끗발 날리던 때가 있었나 싶다. 물론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공포의 대상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과거엔 어느 기업이 세무조사를 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면, 탈세하는 나쁜 기업은 엄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정권에 밉보인 재수 없는 기업이 고생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국세청이 휘두르는 칼날 뒤에서는 항상 구린내가 났다.


그런데 요즘 국세청의 행보에는 당당함이 물씬 묻어난다. 편법상속과 일감몰아주기 등 시장경제질서를 좀먹는 구악을 척결한다는 의미에서 경제민주화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율 인상 없이 5년간 135조원의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하경제 양성화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 두 가지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 국세청이 어찌 당당하지 않겠는가.


국세청의 이런 당당함에 날개를 달아주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국세청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실명제는 두 개의 법률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하나는 금융거래를 할 때 남의 이름 쓰지 말고 본인 이름으로 하라는 취지의 금융실명법이고, 다른 하나는 2000만원 이상의 고액 현금거래나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거래의 정보를 FIU에 보고하도록 하는 특정금융거래보고법이다. 지금은 FIU의 정보 중 극히 일부분만 국세청에 제공된다. 그래서 국세청이 FIU에 축적된 금융거래 정보에 사실상 아무런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른바 지하경제로 탈루된 세금을 추징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라고 하기에는 낯부끄러울 정도로 지하경제 규모가 크고, 이로 인해 탈루된 세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따라서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복지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국세청이 FIU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에 원론적인 차원에서 반대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찜찜하다. 국세청이 금융거래 정보를 샅샅이 들여다보는 그 막강한 권한을 오남용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국세청이 어느 순간 개혁의 전도사에서 권력의 시녀로 돌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과거의 기억을 일순간에 털어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FIU 정보를 국세청에 제공하는 법률 개정에 찬성한다. 그게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이 세상이 선의로만 움직인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오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누가 FIU 정보를 열람했고 어떤 목적에 사용했는지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통지해야 하며, 이 모든 절차가 적절하게 지켜졌는지 철저하게 사후 감사해야 한다. 국회의 신중한 법안 심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하고 싶다. 이게 오늘 이 칼럼을 쓴 목적이다. 국세청이 더 많은 정보를 갖기 위해서는 국세청도 자신이 가진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 중에서 국세청만큼 정보 공개에 인색한 기관이 없다. 인색한 정도가 아니다. 이른바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개인과 기업의 납세 정보는 어떤 경우에도 공개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동사무소에 가서 이웃집 사람의 납세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북구 3개국 같은 수준의 공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합리적 판단의 근거가 될 최소한의 정보는 공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20조원에 달하는 ‘슈퍼 추경’의 재원조달 방법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정부와 여당은 세율 인상 방식의 직접 증세에 반대하면서 전액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논거로 제시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감세 혜택이 고소득층과 중산서민층에게 각각 절반씩 귀착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부자 감세’가 아니라는 국세청의 소략한 자료뿐이다. 이 자료에는 고소득층이 국민 전체의 몇 %를 차지하고 이들의 실효세율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등 감세정책의 계층별 귀착효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정보도 담겨 있지 않다.


지난주 나는 국세청이 홍종학 의원에게 제출한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이용해 소득세 납부자 중 상위 19%의 고소득층에게 전체 감세액의 절반이 귀착되었고, 과세 기준 미달자까지 합치면 이들은 전체 소득신고자의 13%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래서 나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부자 감세가 맞고, 박근혜 정부는 최소한 이것만큼은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계산과 주장이 틀렸을 수 있다. 틀렸다고 주장하려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 책임은 국세청에 있다. 국세청이 FIU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이것이다. 남의 정보를 알고 싶으면 네 정보도 공개하라.



* 이 글은 경향신문 4월 10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