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사면 청원’ 삼성이 결자해지하라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3-02-20   

지난 15일 어느 포럼 행사에서 노회찬 ‘전 의원’을 만났다. 이른바 삼성 X파일의 떡값검사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진 바로 다음날이었다. 오래전에 기획된 이 행사에 그는 의연한 모습으로 참여해 예정된 일정을 다 소화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짧은 악수로 그의 순탄치 않을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빌었다.


이 글에서 통신비밀보호법 및 대법원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내 생각을 남에게 말할 만큼 잘 알고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대법원 선고 직후부터 조국 서울대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된 ‘노회찬 전 의원 특별사면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에 대해서도 언급하기 어렵다. 대의에 찬성하느냐와는 별개로, 특별사면 청원이라는 방법론과 그 시점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이견들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X파일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아쉬웠던 대목들을 돌이켜보면서, 이제 사법부의 판단 차원을 넘어버린 이 사건을 누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X파일 사건의 역설적 피해자로, 노회찬 전 의원 외에도, 이상호 MBC ‘해직기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상호 기자가 해직된 표면적 이유는 X파일 사건과 무관하나, 지금 MBC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 결코 무관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권력의 문제에 침묵하는 언론은 결국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마저 상실하게 됨을 보여주는 실례가 아닌가 한다.


또한, ‘X파일 사건의 본질은 도청이지 그 안에 담긴 정경유착이 아니’라면서, ‘정경유착 등 포괄적 문제는 구조적 원인을 밝혀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고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 사회가 무슨 역사적 교훈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억을 불식할 반성과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제시한 경제민주화 공약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은 모두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이라며 비자금의 원천과 사용처를 덮어버린 삼성특검의 부실수사 역시 최근 삼성가 형제들 간의 분쟁을 계기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더구나 떡값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은 무혐의 처분하고 그 사실을 폭로한 사람만 기소한 검사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등장한 현실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법치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회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X파일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법부의 판단 절차는 끝났으되, 진상규명·책임추궁·피해보상·재발방지의 결론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97년에 일어났고 2005년에 폭로된 이 사건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역시 결자해지(結者解之)다. 삼성이 먼저, 이건희 회장이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


물론 삼성은 2006년 2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X파일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8000억원을 헌납했다. 또 삼성특검 수사결과 발표 직후인 2008년 4월에는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삼성의 엄청난 착각이다. 문제의 핵심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밀실에서 정치권과 사법부를 농락하던 과거의 삼성이 지금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건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 변화의 증거를 느낄 수 없다면, X파일 사건은 끝날 수 없다.


경제 관련 시민단체의 책임자로서 나는 기업의 임원들을 자주 만나고, 그중에는 삼성의 임원들도 있다. 최근 들어 삼성이 뭔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기도 한다.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나 태안반도 기름유출 문제 등에서, 비록 더딘 속도이기는 하지만, 삼성이 피해 당사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이 그 단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을 법적 차원에서만 따지던 경직된 틀을 벗어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은둔의 제왕’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 리더십 체제는 여전히 공고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3월 삼성전자 정기주총에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안건이 올라오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다. 의외이겠지만, 3세 승계에 대한 우려보다도, 리더십 교체를 위한 준비 과정에서 삼성이 보다 열린 조직문화로 전환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친정체제가 계속되는 한 삼성의 변화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런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증거로, 삼성이 노회찬 전 의원의 사면을 청원할 것을 기대한다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어쨌든 이 정도는 돼야 삼성의 변화를 인정할 수 있겠다.


* 이 글은 경향신문 2월 20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