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대통령 3.0’부터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3-01-07   

선거가 끝나니 언론에 등장하는 용어부터 달라졌다. 개나 소나 떠들던 ‘경제민주화’가 싹 사라져버리고, ‘위기관리’가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위기? 한국경제가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싶지만, 요즘처럼 서민들이 먹고살기 어려운 때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가 맞고, 새 정부가 집중해야 할 정책과제 중 하나가 위기관리인 것도 맞다. 그럼 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먼저, 위기의 배경을 보자. 유럽의 재정위기, 미국의 재정절벽, 중국의 성장 둔화 등 해외 불안요인들이 줄줄이 거론된다. 이 요인들이 해소될 날은 기약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외부 충격에 유달리 취약한 한국경제의 앞날도 험난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이들 해외 요인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연초 미국의 재정절벽 문제가 매우 불완전한 형태로 봉합되는 예에서 보듯이, 마지막 순간에 한걸음씩 나아가는 초읽기 바둑의 불안한 행보를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대충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말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나 2012년 초 그리스 사태 때와 같은 불확실성은 제거됐다는 말이다. 회복은 멀었지만, 당장 주저앉을 것 같지는 않다.


더 큰 문제는 국내 변수다. 최근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료 몇 가지가 발표됐다. 우선, 주요 국가들의 중견기업 현황을 비교분석한 코트라(KOTRA)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견기업 비중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숫자 비중으로는 0.04%, 고용 비중은 7.6%에 불과하다. 숫자 비중 11.8%, 고용 비중 46%를 차지하는 독일의 중견기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산업생태계가 망가졌고, 한국경제의 중간허리가 극히 부실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질 리 없다. 공식통계상 실업자는 70만명이지만, 취업준비생, 구직단념자, ‘쉬었음’, 주 18시간 미만 취업자 등을 포괄하는 사실상의 실업자는 390만명이나 된다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의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 연말 중소기업중앙회를 첫 방문한 자리에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하고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위기관리의 핵심 과제다. 이것이야말로 낙수효과에 의존한 재벌 중심의 성장모델, 즉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낡은 유산을 그 딸인 박근혜 당선인이 발전적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한편,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를 보면, 가계 부문의 신용위험이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최고치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의 신용위험도 2009년 2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당연히 금융기관들은 돈줄을 죌 것이고, 원리금 상환 압박이 가중될 것이다. 올해 최대 호황을 누릴 곳은 파산법원이라는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가계부채 문제 해결 등 박근혜 당선인의 민생 공약이 주목받는, 위기관리의 또 다른 핵심 과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위기관리,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위기론을 대량 살포하면서 ‘지키지 못할 포퓰리즘 공약은 일찌감치 폐기해야 한다’는 기득권 세력의 노골화된 저항을 돌파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 발전을 위한 ‘구조조정의 당위성’과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구제금융의 유혹’을 조화시키는 낙타의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요컨대, ‘일관되게 그리고 유연하게’라는 형용모순의 과정이 위기관리다.


박근혜 당선인이 위기관리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의 통치 스타일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한 가지 우려를 전달하고 싶다. 위기관리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의도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 이른바 ‘밀봉 깜깜이 인사’ 식의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구조는 위기관리에 독이 될 수 있다. 정책 차원의 ‘정부 3.0’을 넘어 정치 차원의 ‘대통령 3.0’이 필요하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월 7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