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구조조정, 그리고 세금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2-12-10   

안철수 전 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도우미로 나섰다. 싱겁게 끝날 것 같던 대선판이 다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박빙의 승부 속에 많은 쟁점들이 있지만, 오늘은 대선 후보들이 전혀 또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 세 단어를 중심으로 내년 한국 경제의 과제를 생각해 본다.


첫째, ‘성장률’이다. 6%, 7% 등 장밋빛 공약이 난무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이번 대선에서는 신기하리만치 성장률 목표치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당연하다. 어떤 숫자를 내놓아도 ‘뻥’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올 3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0.1%에 불과했다. 사실상 제로 성장이다. 일본과 유럽이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과 대비해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 정도다.

한국 경제가 어렵다. 아니, 전 세계가 다 어렵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내년 성장률은 2% 언저리에 머물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성장률 목표치를 내거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후보들이 똑똑해졌으니, 유권자들도 더 현명해져야 한다. 2013년 성장률로 다음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를 매기지 말자. 봐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추락하는 성장률에 경제위기 운운하면서 새 대통령을 몰아붙이면, 필히 경기부양과 규제완화 등의 곁길로 샐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 곁길로 새면 실패한 대통령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 성장률 압박감으로부터 대통령을 자유롭게 하자. 그래야 멀리 본다.


둘째, ‘구조조정’이다. 경제위기 가능성은 언급하면서도 어떤 대선 후보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말하지는 않았다. 이 역시 당연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혹독한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우리 모두 엄청난 고통을 경험했다. 사회안전망 없는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그렇지만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재벌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고, 체력이 강화된 한국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에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이 구조조정의 양면성이다. 반면 2008년 이후에는 어떠했는가. 구조조정은 없었고, 구제금융만 있었다. 가계부채는 절대적·상대적으로 더 늘어났고, 경쟁력을 상실한 좀비기업들이 여기저기 활보하고 있다.

2008년 위기 예측으로 전 지구적 스타가 된 루비니 교수의 책에 “파산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 없는 기독교와 같다”는 경구가 있다.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부채의 함정을 탈출하지 않고서는,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을 구분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경기회복은 불가능하다. 이 어려운 과제를 모피아의 관치에 맡겨서는 안된다. 관치의 모르핀 주사로부터 대통령을 자유롭게 하자. 그러려면 국민 역시 금단 증세의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간다.


셋째, ‘세금’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그 재원을 명확하게 밝힌 대선 후보는 없다. 후보도 유권자도 증세를 좋아할 리 없다. 그러나 법정세율을 올리는 것만 증세가 아니다. 방만한 조세감면 제도를 정비해 실효세율을 올리는 것도 증세다. 재원 조달 방안의 하나로 실효세율 제고를 제시하면서도 증세는 없다고 말하는 후보는,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홍길동과 다를 바 없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1997년과 2008년의 위기가 주는 진정한 교훈은, 구조조정과 사회안전망이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경제는 활력을 잃고 사회는 붕괴된다. 결국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증세의 금기로부터 대통령을 자유롭게 하자. 대통령이 멀리 보고 오래 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증세의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초박빙의 승부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51% 지지자와 49% 비판자의 인내심을 동시에 끌어올리지 않고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경제 환경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선되는 그 순간부터 솔직히 말해야 한다. 낮은 성장률, 불가피한 구조조정, 높은 조세부담에 대해 털어놓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그걸 견인하고 인내해야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2월 10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