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가 차기 정부에 주는 교훈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2-11-26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했다. 향후 수년간 수조원대의 소송 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론스타, 참으로 모진 악연이다. 2003년 9월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래 한국 사회에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판단을 회피한 감독당국의 직무유기, 이른바 ‘먹튀’ 투기자본 규제, ISD를 비롯한 한·미 FTA 재협상 등등…. 오늘 그 문제들을 다 복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론스타 사태의 배경이 된 2003년 한국경제 상황을 돌이켜보면서, 내년 새로 출범할 정부가 명심해야 할 교훈을 제시하고자 한다.


노무현 정부는 출발부터 운이 없었다. 인수위 시절에 터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한 방 맞았고, 출범 직후인 3월에는 카드대란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특히 카드사가 발행한 채권을 대량 보유하고 있던 투신권으로 불이 옮아붙으면서 채권시장이 완전 마비되었다. 시스템 리스크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보도자료와 보수신문의 경제면에는 연일 ‘제2의 경제위기’ 운운하는 선정적 표현이 등장했다.


허둥대던 노무현 정부는 ‘관치의 달인’ 모피아에 의존했다. 은행의 팔을 비틀어 조성한 5조6000억원의 브릿지론으로 카드사와 투신사를 지원했으나, 이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하반기 들어 부실 카드사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카드사 간 과당경쟁의 한 축인 삼성카드는 삼성전자·삼성생명 등 계열사의 지원으로 틀어막았고, 또 다른 한 축인 LG카드는 계열분리해서 산업은행에 떠넘겼다. 그 외 은행계 카드사들은 모은행에 합병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미해결 카드사가 하나 남았다. 외환카드다. 당시 구(舊)현대그룹 부실채권에 허덕이던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처리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대주주였던 독일 코메르츠방크도 제 코가 석자라 증자를 포기했다. 결국 외환은행의 새 주인을 찾아 나섰지만, 국내외를 불문하고 금융을 본업으로 하는 회사들은 아예 관심이 없었다. 이때 유일하게 손들고 나선 것이 ‘사모펀드’ 론스타다. 은행법도 아닌 그 시행령상의 예외조항을 확대해석해서 승인했는데, 그 전제조건인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다.


무엇이 문제인가. 카드대란은 금융시장은 물론 국민경제 전체의 안정을 위협한 시스템 리스크였다. 비상 상황에 대한 긴급 대책이 필요했다. 단, 아무리 급해도 최소한의 원칙마저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조6000억원 브릿지론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카드·LG카드였고, 재벌총수에게 부실의 책임을 물을 기회를 날려버렸다. 은행의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면 공적자금을 투입했어야 하는데, 공적자금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정치권과 모피아는 근본도 알 수 없는 사모펀드를 끌어들여 미봉하려고 했다. 이런 편법의 대가는 실로 막대했다. 먹튀 론스타가 챙긴 4조원의 불법차익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요즘 경제위기론이 난무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의 투 트랙’으로 갈아타면서 경제위기론을 부추겼다.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에서 (지금은 사퇴한) 안철수 후보는 위기 대응팀 가동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에 문재인 후보는 시나리오별 대응책 마련 필요성으로 화답했다. 내년 한국경제가 어렵다는 건 일반화된 예측이다. 그렇다고 대선 후보들이 위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경제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수도 있다. 굳이 언급한다면,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 의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1%의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기본이다. 단, 재벌의 저항과 모피아의 관치를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청와대 지하벙커 회의 방식 역시 금물이다.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정공법, 이것이 경제위기론의 덫에 빠지지 않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론스타가 던진 값비싼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란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1월 26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