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송 교수, 이용훈 대법원장, 서기석 부장판사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09-06-09   
이철송 한양대 법학교수, 이용훈 대법원장, 서기석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한국 법조계의 주류 중 주류에 해당하는 이 세분의 공통점은? 이른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신 분들이다.

필자만큼이나 황당했을 세분

이철송 교수는 전환사채 발행 등의 ‘자본거래’는 전적으로 私人들간의 민사문제일 뿐 국가 공권력이 형사문제로 다룰 일이 아니라는 혁신적인 법리를 제공하셨고,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개업 시절 이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에버랜드의 전현직 임원 두 명의 배임혐의 사건에서 무죄 변론을 하셨고, 서기석 부장판사는 이건희 전 회장 등의 삼성특검 관련 2심 판결에서 그 논리를 100% 반영하여 에버랜드와 SDS 사건 모두에 무죄를 선고하셨다.

짐작컨대, 요즘 이 세분의 심사는 필자만큼이나(?) 편치 못할 것이다. 지난 5월 29일(금) 대법원이 주주 배정 방식의 에버랜드 사건에서는 무죄를, 제3자 배정 방식의 SDS 사건에서는 유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신주배정 방식의 외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 모두 이재용씨에게 부와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그룹 차원의 조직적 범죄행위로서 마땅히 유죄라고 주장하였던 필자나, 역시 마찬가지로 신주배정 방식의 외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 모두 자본거래로서 형사사건 자체가 될 수 없으므로 의당 무죄라고 주장하였던 이 세분이나, 이번 대법원 판결이 황당하기는 매일반이다. 한마디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삼성 사건을 둘러싸고 10년 이상 진행되어 온 뜨거운 논란의 양 진영을 모두 실망시켰다.

비겁한, 너무나 비겁한 대법원

영미계통의 보통법(common law) 국가에서는 흔히 입법기관이 둘이라고 한다. 하나는 성문법을 ‘제정’하는 의회이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 사건에서 법의 일반적 원리를 ‘발견’하는 법원이다. 이는 보통법 국가에서 법원의 판례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보통법 국가와는 전혀 다른 법적 전통의 대륙법계에 속해 있으니, 법원의 판결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 분쟁 내지 갈등을 해소하고 나아가 장차 모든 사회구성원이 준수해야 할 새로운 행위규범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법원, 특히 대법원 판결이 갖는 중요성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면, 이번 삼성 관련 대법원 판결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했는가?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건희 회장 일가도, 그들의 무죄를 주장했던 위 세분도 만족하지 못했다. 물론 지난 10년 동안 이건희 회장 등을 고소⋅고발하고 유죄를 주장했던 시민사회단체도, 그리고 어찌되었던 이들을 기소했던 삼성특검도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무슨 갈등이 얼마만큼이나 해소되었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의 사법불신만 심화되었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재벌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데 기여할 새로운 규범을 제시했는가? 매우 안타깝게도, 완전히 거꾸로 갔다. 비상장 가족회사에서 주주 배정과 이사회 결의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면, 형사적 처벌과 민사적 손해배상의 위험 없이 경영권을 2세에게 넘겨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는가?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어렵사리 쌓아온 재벌 지배구조 개선의 성과가 이 판결 하나로 인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원의 판결은 모든 사회구성원을 구속할 행위규범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법원은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갖는 에버랜드 및 SDS 두 사건 모두에서 유죄든 무죄든 어느 한 방향으로 ‘정치적’ 선택을 했었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과거의 논란을 종결짓는 것을 물론, 향후의 유사 사건에서 법적 예측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양자택일의 선택에 따른 자신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치적’ 선택을 했다. 주주 배정이냐 제3자 배정이냐 라는 것만을 기준으로, 그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지극히 형식적인 기준만으로 하나는 무죄, 다른 하나는 유죄취지의 파기환송을 선고했다.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던 날 오후에…. 그래서 이번에 대법원은 너무나 비겁한 정치적 선택을 했다. 과거에 대해서도,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도.

자유방임 경제이론의 법학 버전

대법원을 비난하는 것은 그만 하고, 이제 필자만큼이나 낙담하고 계실 이철송 교수, 이용훈 대법원장, 서기석 부장판사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보자.
솔직히 말해서,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세분의 법리가 전혀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학의 기본 논리에 충실한 법리라고 볼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의 개입 없이 최대한 경제활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다. 자유방임(laissez-faire) 경제이론의 법학적 번역이다.
주주 배정 방식이라면, 말 그대로 기존 주주에게 선택의 기회가 부여되었다. 인수기회가 주어졌는데, 헐값의 주식 인수를 스스로 포기해서 손해를 본 것에 국가가 개입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단지 ‘바보’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한다면, 이 세상사람 중 감옥에 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헐값 발행이 이루어졌다면, 즉 처음부터 기존 주주를 배제하고 제3자에게 헐값에 주식을 넘겼다면, 이는 기존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다. 따라서 부당한 권리침해에 대해 민사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면 될 일이다.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이 역시 ‘바보’다)를 보호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주주 배정이든 제3자 배정이든, 자본거래는 私人들간의 민사 문제일 뿐이지 형사 사건으로 다룰 일이 아니며, 따라서 에버랜드와 SDS 모두 무죄라는 이 세분의 법리의 핵심 내용이다. 한 마디로, 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까지 국가가 보호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결론이 아니라 가정이다

자유방임의 경제이론이 모두 그러하듯이, 이 세분의 법리 역시 그럴 듯하다. 뭔가 찜찜하지만, 비판할 허점을 찾기가 마땅찮다. 이철송 교수가 이 법리를 처음 제시하였을 때, 이를 근거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당시 변호사로서 무죄 취지의 변론을 하였을 때, 그리고 서기석 부장판사가 삼성특검 2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을 때, 모든 언론사의 법조기자들이 느꼈을 심적 혼란은, 암호 같은 수학모형으로 증명된 자유방임의 경제이론을 접하는 학생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방임의 경제이론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문제는 결론이 아니라 가정이다. 반복하지만, 선택할 기회가 있었는데 스스로 포기하였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평등한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거래 행위’,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떠받치는 이념 아닌가?
결국 사실관계 확인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에버랜드와 SDS의 기존 주주들이 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선택하였는가? 최소 85,000원 이상으로 평가되는 주식을 단돈 7,700원에 인수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것이 과연 에버랜드 주주들의 자발적 선택이었는가? 장외시장에서 55,000원에 거래되던 주식을 단돈 7,150원에 제3자에게 넘긴다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거래에 침묵한 것이 과연 SDS 주주들의 자발적 선택이었는가? 그렇다면, 둘 다 무죄가 맞다. 아니라면, 둘 다 유죄다.

이건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확인의 문제다. 아니, 확인할 것도 없다. 에버랜드와 SDS 사건이 이건희 회장의 암묵적⋅명시적 지시 하에 구조본이 기획⋅집행한 일이라는 걸 부정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이걸 부정한다면, 한국의 재벌에 대한 논할 자격이 없다.

낙담하고 계실 세분께 드리는 질문

과거지사는 그렇다 치고, 미래로 넘어가 보자. 우리의 이 천박한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법제도 개선과 관련한 법경제학(Law & Economics)적 원칙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법경제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코즈(William Coase)의 정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래 당사자들간의 자유로운 협상을 저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신주발행의 가격 문제는 공권력의 개입 없이 사적자치의 영역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다. 따라서 주주 배정과 제3자 배정을 가릴 것 없이, 헐값 발행 문제는 형사법원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는 세분의 법리가 도출된다. 이에 따르면, 에버랜드와 SDS 둘 다 무죄로 판결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둘째, 위의 코즈 정리에 대비된 것으로,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홉즈(Thomas Hobbes)의 공리주의적 사고에 따라 “거래 당사자들간의 협상 실패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당사자들간의 협상에는 비용이 수반되기 마련인데, 그 비용이 너무 커서 효율적인 협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당사자들간의 행동을 합리적인 범위 내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따르면, 주주 배정과 제3자 배정 불문하고, 현저한 헐값에 신주를 발행한 에버랜드와 SDS 사건 둘 다 유죄로 판단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어느 방향이 옳은가? 이는 애덤 스미스와 케인스 중 누가 옳은가라는 질문만큼이나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그 답은 각자의 가치판단에 좌우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철송 교수, 이용훈 대법관, 서기석 부장판사가 진짜 순수한 마음에 기초하여(즉 한국사회에 대한 삼성그룹의 영향력과는 무관하게) 위 코즈 정리의 함의에 따라 무죄의 법리를 만들고, 변호하고, 판결했다고 믿고 싶다. 비록 필자는 현 한국사회의 현실에서는 토마스 홉즈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마지막으로, 세분께 질문 하나 드리고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코즈 정리에 따라 법원의 판결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즉 헐값 발행 문제를 형사가 아니라 민사로 해결하라고 주장하려면, 민사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재벌그룹의 계열사들이 ‘바보’같이 엄청난 헐값의 주식 인수를 포기하였다면, 또는 재벌그룹의 계열사들이 ‘바보’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다면, 그로 인해 손해를 본 누군가가 그 ‘바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효한 민사적 수단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가?
이철송 교수, 이용훈 대법원장, 서기석 부장판사. 우리나라 법조계의 최고봉에 있는 세분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그런 유효한 민사적 수단이 존재한다고 믿는가? 지금 당장 그렇지는 않다면, 앞으로 어떤 민사적 수단이 보완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개인적으로는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

필자는 이 질문들에 대해 위 세분이 어떤 답을 하실지 짐작조차 할 길이 없다. 정말 궁금하다. 만약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이 없으셨다면, 감히 말하건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민사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민사적으로 해결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민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어라”고 한 마리 앙뚜와네뜨의 말만큼이나 무책임하고 몰역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삼성의 영향력에 굴복한 것보다도 더 부끄러운 일이다.


* 이글은 오마이뉴스(6월8일)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