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세금이라 부르지 못하는 박근혜 후보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2-11-11   
감시 없이 세금 쓰겠다는 '꼼수'

어제(11월 11일) 박근혜 후보가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였다. 그 핵심은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설치하여 과다 부채와 고금리에 시달리는 서민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18조원, 어마어마하다. 이것만으로도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가계부채 대책을 압도할 만하다. 그런데 이 엄청난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는데, "정부가 직접적인 재원 투입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가? 그 비밀을 밝혀보자.

18조원의 기금 조성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가 관리하는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 배당액 출자, 신용회복기금 잔여재원, 그리고 캠코 고유계정으로부터의 차입금 등을 통해 1조 8,700억원의 종자돈을 마련한 후, 이를 기초로 10배인 18조원의 채권을 발행한다는 것이다. 신용회복기금 역시 2008년 9월에 부실채권정리기금의 잉여금을 출연한 것이니, 결국 종자돈의 기원은 두 가지, 즉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과 캠코 고유계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성격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캠코 산하의 부실채권정리기금은 1997년 외환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조성한 공적자금의 하나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부실채권을 장부가격보다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하여 일정기간 관리 후 시장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에 부실채권정리기금은, 예금보험공사의 (구)예보보험기금과는 달리, 투입액보다 회수액이 더 많았다. 최근 자료를 보니, 부실채권정리기금은 투입액의 약 110%를 회수하였다.

그런데 2003년부터 시행된 공적자금 상환 계획에 따라 캠코(와 예보)가 발행했던 정부보증 채권은 만기가 돌아오면 모두 국채로 전환하여 25년간 나누어 상환하기로 했다. 즉 외환위기에 따른 공적자금 상환 부담은 모두 정부로 넘어갔다. 국민 세금으로 전가된 것이다. 그 결과 부실채권정리기금이 관리 중인 채권을 매각하여 추가로 회수한 돈이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으로 회계처리된 것이다.

원래 이 돈은 공적자금을 상환하는데 사용되어야 하는데, 공적자금 상환 주체가 캠코가 아닌 정부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눈먼 돈'이 되었다. 박근혜 후보의 국민행복기금은 이 눈먼 돈을 가계부채 대책에 쓰겠다는 것이다. 좋다. 쓰는 건 좋은데, 이걸 국민 세금이 아니라고 우기면 안 된다. 이 눈먼 돈만큼 정부의 일반회계에서 세금이 더 나가기 때문이다.

둘째, 캠코의 고유계정 돈을 쓰는 것은 결국 미래의 세금 부담을 유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말에 부실 저축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총 1.7조원의 캠코 고유계정 돈을 끌어다 썼다. 당연히 캠코의 재무구조가 악화되었고, 결국 2009년 5월에 캠코는 6,000억원의 증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정부가 2,000억원을 추가로 출자하였고, 나머지는 수출입은행 등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출자토록 하였다.

캠코 고유계정 돈은 공적자금관리법상 공적자금이 아니고, 당장은 국민 세금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정부 일반회계로 증자하거나 아니면 금융기관의 팔을 비트는 관치를 할 수밖에 없다. 즉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결론적으로,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을 설치하는데 정부 재원이 직접 투입되지는 않는다는 박근혜 후보의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사실상 국민 세금이거나 미래의 국민 세금이다. 물론 가계부채로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을 지원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지만, 중요한 일일수록 명실상부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사실상 세금인 것은 세금이라고 부르지 않고, 사실상 공적자금인 것을 공적자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본질을 은폐할수록 오히려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지게 되어 있다. 박근혜 후보의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차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차입자의 도덕적 해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캠코 또는 그 뒤에 숨어 있는 정부의 도덕적 해이다. 세금을 쓰는데, 감시 받지 않는 방식으로 세금을 쓰기 때문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국민행복기금의 채권 발행은 결국 캠코의 자체 신용으로 할 수밖에 없는데, 작년 말에 캠코가 발행한 공모사채의 연 이자율이 3.75%였다. 따라서 18조원의 채권을 발행하면 연 6,750억원의 이자가 나간다. 1조 8,700억원의 종자돈으로는 3년도 못 버티고, 결국 캠코는 조만간 증자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정부보증을 붙이는 것이 발행금리를 낮추어 국민세금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캠코가 자체 신용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보다 정부보증이 붙은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 훨씬 금리가 쌀 테니 말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 11월 1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