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론은 수구 이데올로기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2-11-12   

꼭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세상 저 끝에 웅크리고 있던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어느새 하늘을 새까맣게 덮을 기세다. 경제위기론 이야기다.


요즘 신문 경제면은 경제위기론 일색이다. 환율 1100원 선이 깨지면서 ‘한국을 먹여살리는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식의 기사가 넘쳐나고, 내년 성장률은 4%는커녕 3%도 어렵다는 암울한 전망이 뒤를 잇는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내년 1월 예정된 재정지출 감소와 증세 등의 재정절벽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측 기사 뒤에는 ‘설상가상 한국경제’라는 장탄식이 빠짐없이 덧붙는다. 경제위기론은 그 정치적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신문의 정치면을 보자. 어느새 경제위기론이 경제민주화론을 밀어내고 있다. ‘민주화가 밥 먹여 주느냐’는 재계의 거친 속내를 아주 세련된 논리로 포장한 견제구가 계속됐고, 가랑비에 흠뻑 젖은 정부와 정치권도 호응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기획재정부는 경제민주화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정치권에 신중한 태도를 주문하는 내부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국회 업무보고 등에 대비한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표지만 가리면 전경련 보고서로 착각할 정도의 일방적 주장을 담은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어떻게 정부의 입장이 전경련과 똑같을 수 있는가.


또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간의 밀고 당기기가 또 벌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 영입으로 경제민주화 담론을 선점한 박 후보가 슬그머니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의 투 트랙’으로 갈아타더니, 김 위원장이 제출한 경제민주화 공약 초안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위기론은 이데올로기다. 부디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한국경제가 위기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미국도 어렵고 유럽도 어렵다. 우리의 영원한 경쟁상대인 대만도 올 성장률이 1.1%에 불과할 거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정말 어렵다. 전 세계가 다 어려운데 한국만 잘 나갈 수는 없다. 이빨 꽉 깨물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허구가 아니다. 복잡한 세상사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가치체계다. 진실의 일면을 담되,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가치체계냐가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위기론은 구래의 기득권 질서를 유지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이 대변하듯, 위기론은 재야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경제 위기’의 주창자가 재계와 관료로 바뀌었다. 예외가 없다. 그러면서 재계와 관료는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성장의 엔진인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재벌에 대한 규제를 완화·폐지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리고 노동자와 서민은 ‘일시적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것이 박정희 개발모델의 낙수효과를 경제위기론으로 새로 포장한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위기가 극복되었는가. 대기업의 선도적 성장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에게까지 흘러넘쳤는가. 아니다. 되레 양극화는 심화됐고, 위기는 항상화됐다. 경제민주화를 경제성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부당전제하는 것 자체가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로기다.


경제민주화는 새로운 성장전략이다. 다수 국민이 균등한 기회를 갖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그 과실을 공평하게 나눠 갖는 새로운 경제질서 창출을 통해 질적 성장을 이루자는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진정한 위기극복 대책이다. 이를 위해 기득권 세력이 ‘먼저’ 고통을 감내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번 12월 대선은 경제위기론이라는 소수 기득권 세력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경제민주화라는 다수 국민의 대항 이데올로기가 한판 승부를 펼치는, 경제 문제에 대한 정치 대결의 장이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경제위기론에 오염된 우리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고 그 대통령을 올바로 견인할 수 있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1월 1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