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경제정책부터 단일화하라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2-10-29   

나는 시민운동을 통해 광의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평소 주장해 왔지만, 솔직히 선거 시즌의 제도정치권은 나에겐 여전히 미스터리다. 아마추어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이 이어진다. 지난주 한 방송사의 TV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문재인 후보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 안철수 후보 캠프의 장하성 국민정책본부장이 각각 30분씩 교대로 출연한 것이다. 각 캠프 경제정책 수장들 간의 불꽃 튀는 삼자 대면 토론을 기대했던 유권자들로서는 여간 실망스러운 형식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그 전 주에 같은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유사한 형식의 토론이 있었고, 내가 질문자로 출연했기 때문에 속사정을 잘 알고 있다. 요약하면, 김종인 위원장 측은 ‘삼자 토론은 절대 안 한다’고 매몰차게 거절했고, 반대로 장하성 본부장 측은 ‘삼자 토론 아니면 절대 안 한다’고 냉정하게 잘랐고, 가운데 끼인 이정우 위원장 측은 ‘삼자든 양자든 좋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접점이 없으니 결국 ‘삼자 개별 토론’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마추어 관전자도 짐작할 수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의 단일화 논의 국면을 염두에 둔 각 캠프의 정무적 판단이 깔려 있다. 외관상 제3자인 박근혜 후보까지를 포함해, 세 후보 캠프 모두가 상대방의 포석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치밀한 수읽기 싸움을 벌인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것은 각 캠프에 참여한 정책 전문가들의 순진무구한 방관적 태도다. 거칠게 표현하면, ‘전문가들은 정책 조언만 하시오. 정무적 판단은 우리가 하겠습니다’라는 각 캠프 선거대책본부의 정치공학적 전략에 놀아나고 있다. 이 구도를 깨지 않으면 경제민주화는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경제정책은 대내외의 환경 변화에 따라 우선순위를 유연하게 조정하면서도 체계적 일관성을 잃지 않는, 따라서 정책적 판단 차원을 넘어선 고도의 정무적 판단을 요한다. 이런 정무적 판단 과정에서 배제된 정책 전문가들은 한낱 들러리에 불과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구도하에서는 재벌의 이념 공세와 관료들의 정보 왜곡에 밀려 경제민주화 요구는 패퇴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책 전문가들도 당연히 정무적 판단에 개입해야 하고 때로는 주도해야 한다. 정책적 조언만 한다면, 굳이 어느 캠프에 이름을 걸 이유가 없지 않은가. 특히 문재인·안철수 양 후보 캠프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정책적 판단과 정무적 판단의 분리’라는 허울 좋은 이분법 구도를 깨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학자로서의 이름을 더럽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캠프에 참여한 목적, 즉 경제민주화의 성공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묻는다. 내 대답은, ‘없다’이다. 왜냐고? 양 캠프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두 달 전까지도 같은 세미나를 해왔던 학문적 동료요, 현실 문제에 같은 목소리를 내왔던 실천적 동료다. 이 분들이 양 캠프로 나뉘어졌다고 무슨 경천동지할 아이디어가 새로 나오겠는가. 원래 이 분들은 하나다.


양 캠프 간에 후보 단일화를 위한 물밑 논의가 시작될 듯하다. 아마추어로서 장담하건대, 단일화 논의를 선거전략 기술자들에게 일임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충분히 빠른 시일 내에,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양 캠프의 정책 전문가들이 이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누구로 단일화되든, 경제정책부터 단일화해야 한다. 어려울 것도 없다. 그 과정에서 현실 판단과 인간적 신뢰를 공유한 하나의 경제팀이 만들어져야 정권교체와 경제민주화에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후보 단일화의 목적이다. 정책 전문가들이여, 정무적 판단을 하라. 경제정책부터 단일화하라. 선거 기술자에게 밀려 정책 기술자로 전락한다면, 당신들도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0월 29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