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세 개의 조직’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2-10-15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한 지 두 달이 지났다. 1년 동안 한국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밀린 숙제 하느라고 정신없이 두 달을 보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일상의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작지만 누적된 큰) 변화가 오랜만에 돌아온 사람에게는 금방 눈에 띌 수도 있겠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소중한 세 개의 조직이 크게 망가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화방송(MBC), 공정위 이야기다. 다른 사례도 있을 것이고, 반박 논리도 있을 테지만, 이 세 조직을 거론한 것은 나의 제한된 경험에 기초한 주관적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먼저, KDI. 우리나라 국책경제연구소의 대표선수다.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저개발국에 전수하는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 중 하나가 KDI류의 국책연구소 설립이다. 그랬던 KDI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장에서 삼성경제연구소를 비롯한 재벌연구소에 밀렸다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재의 현오석 원장은 김만제 초대 원장 이후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KDI 위상의 추락을 막지는 못했다. 세종시로의 이전이 확정된 데 따른 소속 연구위원들의 엑서더스가 한 요인이겠으나, 그것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할 문제가 있는 듯하다.


다음으로, MBC. 2005년 이상호 기자의 X파일 보도, 2008년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MBC는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오곤 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방송 출연하러 들를 때마다 현관에 붙어 있는 심상치 않은 내용의 대자보를 보는 내 마음 역시 편치 않았다. 현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에는 거의 예외 없이 노조의 피켓팅을 본 것 같다. 이번에 귀국해보니 파업은 끝났다는데, 여진은 남았다. 아니, 분위기는 더 엉망이 되어 있었다. MBC 기자들이 자사의 9시 메인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 이건 아니다 싶다.


마지막으로, 공정위. 두말할 필요 없는 시장경제의 파수꾼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직이다. 규제기관으로서 재계와는 항상 마찰을 빚어왔고,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정책의 기조 변화에 따른 논란의 중심에 놓이곤 했다. 그래도 공정위 공무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조직의 존재 이유에 대한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었다. 같은 규제기관인 금융위 공무원하고도 또 다른 뭔가가 있었다.


그런데 현 김동수 위원장 들어서는 속앓이가 심해진 것 같다. 담합 규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일거리도 많아졌고 성과도 없지 않지만, 그 일 처리 방식이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자존심에 상처가 생긴 것이다.


내가 이 세 조직이 망가졌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 것이다. 이 세 조직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KDI), 그 진행 과정을 감시하며(MBC), 규칙을 깬 자들을 처벌하는(공정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인적 역량이 조직의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다. 그런데 구성원들이 충성심을 잃어버리면 어찌되겠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역시 ‘무대포’ 정신을 발휘하면, 기관장의 책임이 크다. 기관장이 자신의 임명권자에게만 충성하면, 그 밑의 구성원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잃는다. 동서고금의 진리다. 조직이 흔들리면, 유능한 구성원부터 떠난다. 그러면 그 조직은 끝이다.

오늘은 매우 비(非)학술적인 글을 썼다. 가설을 뒷받침할 논거도 빈약했고, 주장을 검증할 표본도 부족했다. 따라서 나의 망발로 해당 조직 및 그 구성원들의 명예가 실추되었을 수도 있으니, 사과드린다.


그래도 내친김에 한마디만 더. 기관장과 임명권자는 임기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들이 남긴 상처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대체불가능한 조직일수록 더욱 그렇다. 안타깝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0월 15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