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기업구조조정의 허와 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 소장,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09-06-17   
기업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주채권은행과 대기업그룹 간에 재무개선약정이 체결되면서 계열사와 자산 매각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던 그룹들도 정부의 강력한 선제적 기업구조조정 의지에 밀려 하나 둘 주채권은행과 재무개선약정을 맺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결국 채무불이행 단계에 접어들게 되고, 이는 채권자인 은행의 손해로만 끝나지 않게 된다. 기업이 파산 위험에 직면하면 기업의 우수인재가 이탈하고, 소비자가 더 이상 그 제품을 구매하지 않으며, 하청기업들이 더 이상 납품을 하지 않게 되면서 해당 기업은 급속도로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또, 한 계열사의 부실은 다른 계열사로 전이돼 결국 그룹 전체에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고, 이런 몰락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결국 은행 부실에 따른 국가적인 신용위기마저 초래될 수 있다.

문제는 부실 징후가 보이는 기업들이 선제적 구조조정을 자발적으로 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아직 채무불이행 이전 단계이기 때문에 구조조정 없이도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둘째, 경기가 곧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셋째, 호황기에 비싸게 산 기업을 지금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때 헐값에 팔아야 하는 것이 싫을 수도 있다. 따라서 선제적인 구조조정은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어렵고, 결국 정부와 채권단의 채찍과 당근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이번에 당근으로 내놓은 수단이 바로 산업은행 주도의 사모투자펀드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 사모투자펀드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부실그룹의 계열사를 매입할 땐 시가에 경영프리미엄 20~30%를 얹은 가격으로 한다. 둘째, 수년 후 사모투자펀드가 회사를 매각해서 얻은 차익은 당초 매각그룹과 공유한다. 셋째, 매각 계열사를 되살 수 있도록 매각그룹에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한다. 넷째, 사모투자펀드에 참여하는 다른 재무적투자자들에게는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한다.

차익 중 매각그룹이 공유할 수 있는 비율과 우선매수청구권의 행사가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필자가 볼 때는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겠지만 자칫하면 방만한 경영이라는 원죄가 있는 그룹에 그 대가도 치르지 않게 하고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아무리 방만하게 경영을 하더라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구제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형성시켜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매입할 때 경영프리미엄을 지급하고,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일정 수익률을 보장하며, 나중에 차익을 매각그룹과 공유하게 되면 산업은행은 사모투자펀드를 통해 평균적으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당연히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되고, 경기가 회복돼도 이익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부실그룹의 주주와 총수일가, 산업은행 이외의 채권단, 재무적투자자들을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산업은행이 대부분의 손실을 부담하고 있는 구조다. 국민 부담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자금을 공적자금으로 정의한다면 산업은행 주도의 사모투자펀드도 공적자금 투입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자금은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이 정하고 있는 공적자금 범위에 해당되지 않아 특별법이 강제하고 있는 최소비용의 원칙, 공평한 손실분담의 원칙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선제적 기업구조조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주도의 선제적 구조조정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도덕적 해이 문제와 불공평한 손실부담도 반드시 고려돼야 할 사항들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양쪽 문제를 면밀히 비교형량 해야 할 것이고, 만약 후자가 더 크다고 판단된다면 과감하게 선제적 기업구조조정을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이 글은 매경이코노미(2009.6.17)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