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경쟁 논리는 강자 앞에서 멈춘다

이창민 |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 한양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2-05-11   

경쟁을 촉진하는 시장과 능력 중심의 인사라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은 겉으로 보기에 나쁠 거 없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고 이보다 나은 체제를 찾기 힘들다는 것도 이미 상식이다. 거창한 이념 논쟁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고 미세한 것들이니 그냥 현실의 시장을 한번 들여다보자. 자본주의의 성지 미국에 한 일화가 있다. 산드라 데이 오코너라는 미국 최초의 여성대법관이 스탠퍼드 로스쿨을 3등으로 졸업한 것이 1952년인데 그녀가 구할 수 있는 첫번째 직업은 법률비서였다. 1960년에는 의사와 변호사의 94%가 백인남자였는데 이게 60% 정도까지 떨어진 게 2010년이고, 이러한 시장의 진보가 그 기간 1인당 GDP 성장률의 20~40%를 설명한다는 실증분석이 있다. 자, 한국이 1960년대 미국이라는 게 아니다. 경쟁과 능력이 잘 작동하는 시장은 능력자로 추앙받는 보수 남자 엘리트 몇 명의 입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전과 응전의 긴 역사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에서 능력과 경쟁의 논리는 사회적 강자들 앞에서 무력화된다는 것이다.


첫번째가 한국 기업의 경영권(지배권) 시장이다. 최근 아워홈이라는 범LG일가 회사의 총수일가 남매들끼리의 분쟁이 있다. 보복운전, 배임·횡령 등으로 지난해 6월 여동생 3명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패배한 4남매 중 1남인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이 이번에는 여동생 중 한명인 구미현 부회장과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 4남매를 합치면 거의 100% 지분에 가까운 비상장 회사이기 때문에 자기회사 자기들끼리 이합집산하며 다투는데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인식이다. 만약 상장회사이고 다른 주주들이 존재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왕자의 난, 형제의 난, 조카의 난 등은 우리들의 일상이다.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 너는 회장이 될 거야”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들에게 경영권이 능력과 경쟁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진입장벽과 경쟁제한이 있는 게 기업의 경영권 시장인데 한국사회 능력과 경쟁의 신봉자들은 이들 앞에서는 조용하다. 심지어 회사의 경영권이 총수일가의 사유재산이라는 궤변까지 동원해서 신문에 칼럼을 쓰기도 한다. 이제 빌 게이츠도 각성하고 CEO 상속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겠다. 왜 사유재산을 전문경영인에게 기부하나? 더 불행은 이런 궤변을 공론장에서 춤추게 한 사람들이 한국에서 사외이사가 된다.


이번 윤석열 정부 입각후보자들을 통해 한국 사외이사 시장의 민낯이 드러났다. 작년 경제개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기업집단 상장계열사 사외이사의 37%가 학계, 19%가 전직공무원, 10%는 법조계 전관이다. 재계 출신은 21%이다.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미국과 세부적으로 비교를 해보자. 미국 상장기업 사외이사의 50% 이상은 전·현직 경영인이다. 학계와 전관은 미미하다. 왜? 사외이사의 기본목적은 주주를 대신하여 경영진에 대해 감시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시도 뭘 좀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면 아마 교수와 전관도 전문가라고 반론할 것이다. 그런데 이게 10~20%의 비중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사외이사의 66%를 차지하고 있는 걸 방어하려고 드니 우스워지는 것이다. 두번째, 시장의 유인구조가 다르다. 예를 들면 미국은 CEO로 재직 시 실적이 좋았던 사람이 은퇴 후 사외이사를 많이 한다. 또, 인수·합병 시 사외이사로서 자기회사 주주의 이해를 잘 대변해서 좋은 협상을 이끌어내면 사외이사 시장에서 인기가 올라간다. 반대로 사외이사로 재직 시 회사주주에게 소송을 당하면 시장에서 퇴출된다. 심지어 주주총회의 이사선임 투표에서 선임은 되었어도 찬성률이 낮으면 그해 열심히 일한다. 자, 사외이사의 시선이 가리키는 방향은 주주의 이익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목적대로 행동한다. 내가 CEO로 있을 때 잘해야 은퇴 후 사외이사도 하고, 사외이사로서 주주이익을 잘 대변해야 사외이사를 더 한다. 한국은? 전관 출신이 50대 초중반에 나와 사외이사를 하고 있다고 치자. 그의 최종 목적은 기회가 오면 다시 입각하는 것이다. 그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서 총수와 각을 세울 유인이 있을까? 나 같으면 조용히 살 것이다. 심지어 언론에도 영향력이 있는 총수를 건드려 굳이 나의 앞길을 험난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이런 시장의 디테일을 외면하는 정치인들은 결국 하고 싶은 게 없는 거다. 차라리 이 좋은 세상 그냥 놔두자고 주장하자.


​* 이 글은 경향신문 5월 11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