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맨 뒤 처진 사람들부터 삼킨다

최한수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1-09-06   

“질병은 생물학적 현상이자 동시에 사회적·정치적·심리적 현상이다. 많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심대한 위기가 닥치면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사회의 내면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유럽 경제사 전문가인 주경철 서울대 교수 칼럼의 한 구절이다. 물론 그가 말한 질병은 중세 유럽의 페스트였지만 이를 코로나19로 바꾸어도 문제는 없다.


코로나19가 드러낸 숨기고 싶은 사회의 내면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평등일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질병이나 전쟁과 같은 큰 충격을 ‘평형추’(equalizer)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2007년 금융위기 3년 동안 미국의 하위 99%의 소득은 12%, 상위 1%의 소득은 36% 감소했다. 주식시장의 폭락이 상위 1%의 자본소득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 사회의 불평등은 잠시나마 완화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현상이 오히려 예외임을 보여준다. 우리만 하더라도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불평등이 더 악화되었다. 직업 안정성이 취약하고 자산이 적은 하위 계층이 위기에 더 크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는 어땠을까? 지난 17개월 동안 미국의 억만장자들 재산은 무려 62%, 액수로는 2000조원 증가했다. 이는 주식시장의 전례 없는 활황 때문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이것은 시이오(CEO)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닌 금리 인하나 대규모 부양책과 같은 외부 요인의 산물이다. 반면 그 기간 8600만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고 3800만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이 중 62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코로나의 시작은 모두에게 우연이었지만 그 끝은 계급적 지위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도 올해 2/4분기 소득 1분위 가구의 소득은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6% 감소했지만 정작 5분위 가구는 1% 늘었다. 코스피 지수는 작년 3월보다 50% 올랐지만 자영업자 수는 불황과 거리두기에 따른 폐업으로 31년 만에 가장 줄었다.


위기 속에 내면이 드러난 또 다른 것은 보수언론이다. “페스트는 계급관계를 심화시킨다. 병은 가난한 사람들을 공격하고 부자들을 면제해준다”는 사르트르의 지적은 코로나19에도 유효하다. 한국의 언론은 2022년 예산안을 놓고, 이것이 취약계층 지원에 도움이 되는가를 보기보다 ‘나랏빚 1000조’나 ‘빚내서 돈 풀기’라는 자극적인 기사로 정권 비판에 여념이 없다. 동시대 이웃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는 미래세대의 부담을 걱정하는 부조리한 상황. 이들 주장은 계급적으로 편향되었을 뿐 아니라 최소한의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정말로 미래세대가 걱정이라면 ‘슈퍼리치’와 ‘슈퍼스타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걷자고 주장하면 된다. 예컨대 자본소득자의 0.0001%, 숫자로는 100명 이내의 재벌 총수 일가들은 1년에 배당만으로 650억원이 넘는 소득을 번다. 이들은 코로나19로부터 전혀 충격도 받지 않았으며 일부는 오히려 부가 늘었다. 이들이 지배하는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필자의 간단한 계산에 따르면 차기 정부가 최고 한계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지금보다 10%포인트와 5%포인트로 높이는 한시적인 사회연대세를 만들어 배당소득자 상위 0.001%와 시총 5조 이상의 슈퍼스타 기업 70곳에 적용할 경우 연 2.6조, 5년 동안 약 13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이 돈을 근거로 5년짜리 코로나연대 채권을 발행한 뒤 이를 방역과 사회 약자 보호를 위한 재원으로 쓰면 된다. 보수언론이 재정건전성을 언급할 때 보였던 열정의 반만이라도 사회연대세에 쏟는다면 이들의 진정성은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다시 주경철 교수의 글로 돌아가자. “사회 계층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정치 엘리트는 과연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그리고 총체적으로 해당 사회의 품격이 어느 수준인가 하는 점들이 비로소 눈에 보인다. (…) 악마는 맨 뒤에 처진 사람들부터 잡아먹는 법. 그렇지만 능력 있는 정부, 품격 있는 사회라면 뒤에 남은 사람들부터 지켜주어야 마땅하다.” 기계적 획일이 공정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 세상에서 코로나19의 충격을 맞은 불운한 이웃들이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돕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 셈법에 들어맞는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품격을 지키는 모든 일들이 그런 것처럼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 9월 6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