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공포와 증세 강박을 넘어

최한수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1-07-12   

코로나19 이후의 재정정책은 ‘부채공포증’과 ‘증세강박증’의 두 좁은 길 사이를 걸어가야 하는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사이에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문제점을 알아야 한다.


부채공포증은 높은 국가부채를 마치 비만이나 고혈압 같은 질병과 동일하다고 본다. ‘나랏빚 1985조원, 사상 첫 GDP 추월’, ‘코로나 돈풀기에 나라 곳간 ‘텅텅’…국가부채 2000조 육박’과 같은 제목의 자극적 기사는 ‘국가부채의 방치가 자기 몸을 치료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과 같다’라는 식의 정서를 자극한다. 자연스럽게 지출 축소와 재정건전성의 ‘처방’이 내려진다. 이러한 논리에 힘입어 지난 20년 동안 재정건전성은 재정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실질이자율의 감소, 낮은 경제성장률, 저물가”로 특징지어지는 ‘만성적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과도한 재정적자가 민간 투자를 구축한다는 주장에 문제가 있으며 국가부채비율보다 ‘국내총생산 대비 국채이자비율’이 재정여력 판단의 더 정확한 지표일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우리 정책 당국 역시 이러한 주장에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포 마케팅의 근본적 문제는 경제적인 것보다 그 정치적 귀결에 있다. 영국은 2007~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정부 지출을 크게 늘렸고 그 결과 재정적자의 폭 역시 빠르게 증가했다. 결국 2010년부터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지출을 축소하는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시행하였다. 그 정치적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최근 연구는 긴축정책에 따른 복지 축소를 경험한 집단이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에 더 강한 지지를 표명했음을 보였다. 재정건전성의 집착이 저소득층을 사회경제적 위험에 방치시키고 이것이 이들의 포퓰리즘 성향을 자극해 브렉시트라는 자해적 결정을 내리게 만든 셈이다. 브렉시트뿐만 아니라 사스, 에볼라, 지카처럼 코로나19와 유사한 팬데믹을 경험한 국가에 대한 연구 역시 긴축정책의 무리한 시행이 확장적 재정정책보다 3배 이상의 불평등 증가와 관련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재정정책에 있어 부채공포증의 대척점에 증세강박증이 있다. 이는 ‘보편증세’ 없는 복지 지출은 기만이라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증세를 공개적으로 얘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 문제점은 그 실현 가능성에 있다. 역사적 경험은 1990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어디에서도 복지 재원 목적의 대규모 증세가 성공한 적이 없음을 보여준다. 북유럽 국가들의 대규모 증세는 1970~80년대의 일이며 독일이나 일본에서의 소비세 위주의 증세 시도는 반증세 정서에 막혀 정치적으로 수차례 좌절된 뒤에야 낮은 수준에서 실현되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최근의 증세론은 ‘절대다수가 내는 세금보다 받는 복지 혜택이 크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 증세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의 한 설문조사(‘사회보장과 기본소득 증세에 관한 인식조사’)는 이러한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사회보장 혜택의 증가를 전제로 세금을 더 부담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추가 부담의 액수는 수령액의 10% 정도 수준이었으며 증세의 주체 역시 자신이 아닌 타인(고소득층과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의 정치에 부합한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64년부터 2017년 사이 열한번의 연방 소득세율 변화가 있었다. 이 중 증세가 실현된 건 세번뿐이었는데 예외 없이 중산층의 세 부담은 줄거나 변화가 없고 최상위층의 세 부담만 증가하였다.


즉 복지 확대 목적의 보편증세 실현에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는 중산층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비용보다 편익이 크다는 것을 넘어 증세 이후 시행될 복지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시켜야 한다. 특히 중산층은 소득 과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를 피해 진행되는 증세로 인한 세수 증가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코로나19 이후의 재정정책은 증세보다는 국채 발행을 통한 조달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그 폭과 범위는 경제적 제약뿐 아니라 정치적 제약에 의해 결정될 것임을 시사한다. 차기 정부의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 7월 1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