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께

이창민 |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 한양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1-03-25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으로 취임한다. 국내 4대 그룹 총수가 회장을 맡는 것은 처음이다. 최 회장의 철학인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반면, 국정농단 사태 이후로 힘이 빠진 경제단체들이 연합해 대정부전선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대표단체 수장으로서의 방향타에 대해 몇가지 제안을 드려본다.


첫째, 존경받는 부자가 없는 사회에 롤모델을 제시해주시길 제안드린다. 사람들은 재벌일가를 부러워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잘난 사람 배 아파한다고 하겠으나 그렇게 치부하기엔 총수일가의 역사가 부끄럽다. 범죄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왜 그럴까? 총수일가들은 왕관의 무게를 견디느라 힘들다 한다. 범죄의 원인은 상속세고 어느 순간 마약도 자연스럽다. 결국 자기합리화, 자기연민이 가장 무서운 적이다. 누구도 영원불변 구중궁궐 왕조 건설을 강요한 적 없다. 강한 자만이 정치권력 앞에 살아남는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피해자 코스프레는 전두환에게 미움을 사 해체당했다던 1985년 국제그룹 사건을 연상시킨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재벌의 정치경제적 위상 변화를 굳이 말해야 하나. 감독기관의 한 임원은 사외이사에게 쓴소리를 좀 하려고 해도 전직 검찰총장, 장관이 앉아 있어 부담스럽다 했다.


둘째, 상의는 규제 완화만 외치는 로비단체에서 벗어나자. 박용만 전 상의 회장도 언급했지만 상의는 사익과 공익의 균형을 추구하는 게 법에 규정된 목적에 맞다. 기업, 아니 총수 이익만 추구하는 게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철 지난 얘기는 그만하자.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라는 미국 초거대기업 시이오(CEO) 연합은 최저임금, 의료보험, 장학금, 이민정책 등 광범위한 공공정책에 관여한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가입한 ‘더기빙플레지’는 세계적 부자들의 자발적 기부단체이고 이를 만든 사람은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다.


셋째, 1세대 창업주에게 상의에서의 큰 역할을 부여해달라. 최근 삼성을 좀 안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한마디로 이상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었던 장충기 문자에서 드러난 것 같은 사회 전반에 대한 관리 시도는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고 과감한 내부혁신 또한 느껴지지 않는단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철학이 불분명해서일 것이다. 이게 재벌 3·4세의 한계다. 가족기업에 대한 연구를 보면 부모와 자식이 세대 차이가 큰데도 비슷한 경영철학을 공유하는 건 아버지의 수렴청정을 오래 겪어서다. 이 과정에서 좋은 것, 좋지 않은 것 다 배우게 된다.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던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는 데 반해 금수저인 3·4세대가 조용한 것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넷째, 한국판 이에스지를 해달라. 미국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이 2018년 발의한 ‘책임자본주의법안’은 기업의 목적 범위를 주주의 이해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넓히는 것이다. 그러나 맥락을 더 살펴보면 성숙한 주주자본주의에서 오는 과도한 소득불평등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는 기업 내 시이오와 노동자 간의 천문학적 연봉 차이뿐만 아니라, 주식보유자와 미보유자의 불평등을 가져온다. 자, 말잔치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분명하다. 상의의 관점에서 한국판 사회적 책임의 우선순위가 필요하고 최우선은 지배구조와 중소·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일 것이다. 외국의 이에스지 맥락을 따라가기엔 한국은 총수의 권력이 너무 강하고 주주의 권리는 깃털만큼 가볍다. 지배구조 개선 없는 이에스지는 물의를 일으킨 총수일가의 이미지 세탁일 뿐이다. 또한 중소·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상공인대표단체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명분도 분명하다. 상의의 법적 사업 중 하나는 대기업 및 중소기업 간 협조와 조정이다. 자유롭고 따뜻한 상의 회장님을 기대한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 3월 25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