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무게

이총희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회계사   작성일시: 작성일2021-03-11   

학교폭력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학폭에 연루된 이들은 선수활동이나 연예활동을 중단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과거의 실수로 직업활동을 막는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학폭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없었기에 뒤늦게 대중에 의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작에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졌다면 피해자들이 고통받을 이유도 없고 뒤늦게 대중의 힘을 빌릴 이유도 없기 때문에 제도적인 정비가 미비한 현실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처벌을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수준이 합리적 처벌인지 정하기가 참 어렵다. 사회의 시각 역시 사안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기간에도 회계사가 될 수 없다. 변호사나 변리사, 감정평가사도 유사한 규정이 있다. 법을 위반하는 것은 직무와 무관한 상황에서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과실로 불을 내면 3년 이하의 금고형을 받을 수 있다. 담배꽁초를 버려 불이 나면 그에 대한 처벌을 받는 것과 별개로 갑자기 직업을 그만두어야 하니 억울할 수 있다. 의사들이 의료법 개정을 막으려 하는 것도 이런 논리에서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식은, 그만 한 벌을 받았으면 자격을 제한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금고는 무거운 형이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의 수준이 아니다. 일반적인 실화는 벌금형이고, 중과실에 따른 실화만 금고형이 가능하다. 따라서 금고형을 받을 정도의 죄를 지으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고 전문자격을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징역형을 받은 회장님이 옥중경영을 하거나, 집행유예 기간에도 회장직을 유지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본다. 전문자격은 박탈되는데 기업 경영은 할 수 있다니,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 사기업과 국가가 공인한 자격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장회사는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국가 공인 자격보다 더 엄격한 제한이 필요하다.


회장님의 취업제한에 대해 반발하는 재계에서는 이러한 제한이 이중처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회장님은 업무영역과 관련된 법률을 위반했을 때만 취업이 제한되므로 범죄 종류와 상관없이 금고 이상이면 자격을 제한하는 전문자격보다 더 완화된 요건이 적용된다. 많은 이들의 고용을 책임지는 기업인들은 전문자격보다 더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죄를 지었을 때는 더 엄격히 다루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취업제한 규제는 오히려 너무 약하다.


지위에는 그 무게가 따르기 마련이다. 학폭을 저지른 선수도 자숙을 하고, 자격사들도 자격을 반납하는데 재벌의 회장님은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한다면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법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이제부터 공론화해 바꾸면 된다. 권력이 있다고 해서 실행된 법을 무력화한다면 무법의 사회가 될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9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미등기 임원직을 유지했다. 준법경영이 총수의 사면을 위한 쇼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법무부의 조치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 3월 11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