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과 기업 가치

이창민 |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 한양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1-02-02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긴 여름휴가 기간 민주주의 축제를 연다고 한다. 핀란드는 ‘수오미 아레나’라는 축제를 여는데 2019년 7만3000명이 참가했다. 인구가 약 550만명인데 말이다. 정당, 고용주 단체, 노조, 각종 이해 관계자 집단과의 토론이 프로그램이고 사회보장, 기후, 교육, 이민 등 각종 이슈를 포괄한다. 필자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휴가에 이런 걸 하고 싶나?’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요즈음 한국 대학에는 외국인 유학생이 제법 된다. 한국말, 영어 둘 다 능통하지 못한 유학생을 대할 때면 힘들다. 그때마다 날 다잡는 건 미국 유학의 경험이다. 필자의 지도교수는 학부 예일대, 박사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나온 미국 백인이었다. 말과 글이 뛰어났다. 지도교수가 나를 대할 때의 인내심을 상상하면서 외국 유학생을 대하려고 노력해보나 그 약발도 이제 떨어져 간다. 그러고 보니 나는 중고등학교 때 민주주의, 인권, 차별 등에 대해 몸으로 체화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민주주의는 글로나마 배웠으나 인권, 차별 등은 머리로 학습해 본 적도 없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관한 토론회에 나갔다. 난장판이 될 가능성 때문에 걱정이 좀 됐다. 같은 단어에 대해 극단적으로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으면 대화가 될 리 없다. 예를 들면 시장경제다. 해외를 보면 경영진이 기업 범죄를 저지르면 규제 당국, 사법부에 의한 처벌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에 의한 다양한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고, 투자자들에게는 위험한 기업으로 인식돼 과징금과 손해배상 액수의 7.5배를 주가 하락으로 날려버린다. 대출시장에서는 0.6% 정도의 프리미엄을 문다. 자본 조달이 힘드니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경영진은 감독 당국의 처벌이 끝나기도 전에 93%가 자리에서 물러난다. 범죄를 감독하지 못한 사외이사의 숫자는 향후에 반 토막 난다. 이런 게 시장이다.


흥미로운 건 한국이다. 아무 변화가 없다. 주가도 하락하지 않으며, 매출도 줄지 않고, 자본 조달에도 문제가 없으며, 투자도 줄지 않는다. 더구나 범법 경영진은 회사로 복귀하고 사외이사는 아무 일 없이 잘 지낸다. 2003~2017년 국내 자료가 그렇게 말한다. 왜 그런가는 일단 옆으로 밀어두자. 문제는 여기서 한술 더 뜨는 사람들이 있다. 투자가 줄어드니 총수를 괴롭히지 말라고 공포를 조장한다. 자, 이 정도면 그냥 시장을 글로 배운 정도를 넘어선다. 시장경제는 사유재산을, 그것도 특별히 부자의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사회주의의 반대 정도 개념에 머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유재산이란 개념은 수십년째 업데이트도 하지 않는다.


예전에 대법관까지 지냈다는 분은 고율의 상속세를 얘기하면서 “현재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는 부분은 그 세율이 50%로, 기업은 반쪽이 된다”라고도 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이 4.18%다. 2.09%가 이 부회장에게 상속되면 삼성전자가 반쪽이 되나? 여기에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세습하는 것이 천부인권이라는 생각까지 더해지면 난감하다. 미국의 가족기업(창업자 일가가 대주주인 기업 또는 의결권이 높은 기업)인 나이키, 월마트, 포드 등의 경영 구조는 다양하다. 총수 일가와 전문경영인이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할지는 기업 가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어야 한다.


한국의 시장 참여자가 왜 이리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에 관대한지는 분석해볼 생각이다.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지금은 소위 말하는 여론 주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오래된 집착이 무섭다. 마음은 세상을 바꾸지만 고정관념은 세상을 썩게 만든다.


​* 이 글은 국민일보 2월 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