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안전망을 찾아서

이총희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회계사   작성일시: 작성일2021-01-14   

새해 첫날, 안경점을 하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덕담으로 시작한 안부전화는 거리에 사람이 없어 물건을 팔 수가 없다는 푸념으로 이어졌다. 렌즈는 인터넷 판매가 아예 불가능하고, 안경도 온라인으로 구매하기 힘든 물건이라 비대면으로 사업을 하기도 어렵다. 이제 임차료를 내고 나면 직원에게 월급 줄 돈도 없다는데, 자영업자들의 내리막에 과연 끝이 어디일지 걱정이다. 친구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거리로 나온 헬스장, 코인노래방 사장님들도 방역을 위한 끝없는 희생에 좌절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성장한 기저에는 늘 누군가의 희생이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도,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희생하는 이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기보다는 억압해 왔다. 그들이 사회의 취약계층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각자도생을 내면화하고,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쳐 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코로나는 모두에게 다가온 재난이었다. 재난에 대한 대응이 불가피한 점을 모두가 합의했다면 그 결과가 불평등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기업은 경영상의 이유로 5인 이상 모일 수 있는데, 자영업자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사회의 선택이지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다. 빠른 회복을 위해 우리가 요구한 희생인 만큼 협조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희생에 대해 미담으로 포장하고 박수와 격려로 끝내는 것은 구식이다. 투자열풍이 불어오는 사회에서 돈을 터부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이들의 희생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면 그만큼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급할 때는 희생을 요구하고, 회복할 때는 각자도생을 외친다면 다시 이런 위기가 왔을 때 사람들은 협조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지불하는 비용이 일회성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 앞으로 언제, 어떻게 이러한 재난이 찾아올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K자 회복을 지켜볼 것이 아니라 K사회안전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복지병이란 과거의 허상에 집착하기보다 우리 수준에 맞는 적절한 안전망을 구축할 때가 되었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더 시급한 것은 재난 희생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자유다.


경제 지면엔 공매도 재개에 대한 논란,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에 대한 논란이 자리하고 있다. 위기에 희생한 이들에 대한 고민보다, 위기가 기회가 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 중요한 사회가 된다면 K자 경기회복의 끝에는 더 심한 갈등만 남게 될지 모른다. K방역, K뉴딜, K컬처, K푸드. K를 앞세운 단어가 긍정의 상징처럼 쓰이고 있다. 하지만 K자 회복이 되어버린 사회라면 더 이상 K가 긍정의 상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각자도생의 K사회가 될지, K안전망을 만들어서 사회의 구조를 바꾸어 나갈지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사회적 멈춤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고, 이것이 안전망으로 정착해야 우리 사회는 진짜 자본주의 사회가 될 수 있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월 14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