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투기자본이라는 ‘에비’

최한수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0-11-30   

내가 가장 좋아했던 <한겨레> 칼럼의 필자는 고 정운영 교수님이었다. 한번은 정 교수님이 <이론>지 창간사에서 이어령의 “에비의 문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 “우는 아이를 달랠 때 어른들은 흔히 ‘에비가 온다’고 겁을 준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어른도 그 말을 듣는 아이도 정녕 에비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정체를 아는 에비도 있다. ‘공정 3법’에 있어서 외국 투기자본이 그 예이다.


‘공정 3법’과 같은 개혁법안에 대한 재계의 입장은 한결같다. “(법이 통과될 경우) 경영권 위협이 증대하여,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여야 할 자금이 불필요한 지분 매입에 소진되는”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으름장은 예의 ‘에비의 겁박’처럼 본질적으로 유아의 언어에 불과하다. “경영권 위협”으로 10년간 기사를 검색해봤다. 재계 주장대로라면 재벌 몇 개는 외국 투기자본에 대해 경영권 방어장치 하나 허용 않는 ‘불공정한 경영환경’ 아래서 사라졌어야 했다. 그러나 에스티엑스(STX)나 금호의 사례에서 보듯 실제 재벌은 견제받지 않는 총수의 과욕이나 오판 때문에 사라진다.


사실 이 법들은 기존 재벌들의 혜택은 손대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예컨대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지분율 요건을 강화한 공정거래법은 현재 낮은 지분으로 계열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에스케이(SK)에 대한 특혜이다. 마찬가지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규제 역시 계열사 간 합병 등에만 적용되게 함으로써 이사 임명을 통해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유지시켜 주는 삼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재계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공정 3법에 대한 재계의 반대가 상법상의 감사위원 분리선임에 집중되는 이유이다. 재계는 이 조항으로 인해 외국 투기자본이 추천한 감사위원이 이사회에 참여하여 핵심기술을 유출하고 이사회를 장악하여 경영권을 탈취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민주당 오기형 의원의 지적처럼 이 규정은 이번에 신설되는 것이 아니다. 이 조항은 1962년 상법부터 존재하던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3% 의결권 제한을 이명박 정부가 사문화시키기 전으로 일부 복원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국민의힘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조차 “감사위원 분리를 안 하려 하면 법 개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혹자는 이 조항이 1주1표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1주1표를 한참 넘어 1%와 0.5% 남짓한 내부 지분율로 326조와 173조의 그룹 자산을 지배하는 삼성과 에스케이 지배주주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한 지배주주의 소수주주 착취가 만연한 환경에서, 독립적 감사 선임을 위해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 무슨 심각한 문제를 낳는가. 경제개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15~20년 사이 독립성에 문제가 있는 감사의 비중은 41% 수준이었다. 이는 독립성에 문제가 있는 사외이사 비중인 23%와 비교했을 때에도 높다. 사실상 대주주가 임명한 감사의 독립성을 기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76%가 계열사 임직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들의 주장을 논리적 근거로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감이 없다 보니 결국 외국 투기자본이라는 에비를 다시 찾는다. ‘에비 논리’의 핵심은 외국 자본이 연루된 과거의 모든 사건들로부터 어떤 패턴을 찾아 단 1%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발생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그 주체가 소버린이든, 엘리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이 논리대로라면 300조의 현금을 갖고 있는 애플이 시총 400조의 삼성전자 주식 절반을 사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것도 가능하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렇게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사건들의 발생 확률을 과대 계산함으로써 정상적 판단을 망치는 논리의 위험함을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다.


이제 서두에서 인용한 이어령의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로 돌아가 보자. 그 글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우리는 그 치졸한 유아언어의 ‘에비’…에서 벗어나 다시 성인의 냉철한 언어로 예언의 소리를 전달해야 할 시대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외국 투기자본이란 에비에 기대 문재인 정부의 개혁 입법의 무력화를 정당화하려는 김병욱과 양향자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꼭 되새겼으면 좋겠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 11월 30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