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

최한수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0-11-02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는 얘기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 세 가지가 재벌 회장님 걱정, 연예인 걱정, 건물주 걱정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언론은 이 세 가지 걱정을 제일 열심히 한다는 사실이다.” 이건희 회장의 사망으로 촉발된 상속세 논란을 지켜보면서 여기에 두 가지 진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언론은 재벌 회장님 걱정을 그렇게도 열심히 한다.


정작 유가족은 말도 없는데 “이건희 상속세 11조, 호주 캐나다였으면 한 푼도 안 냈다”거나 “이건희 주식재산만 18조, 상속세 10조 어떻게 마련하나” 식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게 바로 ‘장충기 문자’의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건가 싶다. 정확히는 삼성 총수일가의 눈이겠지만.


언론이 운을 떼자 야당이 받는다. 나경원 전 의원과 야당의 어느 청년 비대위원은 대한민국의 상속세율이 생산적 가업 승계와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 및 투자,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의 국내 기업 보호에 있어 바른 수준인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출발이 무엇이든 투기자본으로 끝나는 상투적 재벌 옹호 논리라 그다지 설득력은 없지만 그 걱정의 마음 하나만은 눈물겹다. 이 모든 것의 화룡점정은 “삼성 상속세 없애주세요”라는 청와대 청원이다. 상속세는 삼성이 아니라 이 회장의 가족들이 내는데 왜 삼성을 걱정해야 할까.


정말 상속세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 일가의 지배력이 흔들릴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건 이건희 회장 사망 이전 이미 16억원의 증여세로 400조가 넘는 삼성그룹을 넘겨주는 방법을 찾아낸 삼성의 총수일가와 ‘가신그룹’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상속세 규모가 약 10조라는 것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언론이 잘 언급하지 않는 다음의 사실들도 있다. 먼저 이 부회장의 상속재산에는 주식 이외 상당한 규모의 현금이 있다. 과거 삼성특검을 통해 확인된 차명재산, 계열사 주식의 배당금 등이 그것이다. 2014년 이 회장이 쓰러진 이후 받은 배당금만 계산해도 약 1조원이 된다. 1.8조는 향후 상속세 연납의 5년 동안 가족들이 보유한 삼성계열사 주식의 배당금으로 가능하다. 이것은 배당을 작년 수준으로 유지할 때 얘기이고 주식시장에서 예측하는 것처럼 배당을 더 높인다면 액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또한 이 부회장 쪽이 보유한 삼성에스디에스(SDS)나 전자 주식의 경우 지배권과 무관하므로 매각 가능하다. 이 경우 4조 수준의 현금이 나온다.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걱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회장의 전자 지분 일부를 그룹 소속 공익법인에 넘겨 지배권의 약화 없이 상속세 자체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여론의 비난이 문제인데 지금처럼 언론이 걱정해준다면야 큰 문제가 되겠나 싶다. 상속세 문제 해결 끝! 참 상속세 재원으로 쓰일 이 부회장이 소유한 계열사 지분 또한 적절한 세금 납부 없이 편법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점은 다 지나간 일이니 더 문제 삼지 말자.


삼성 일가의 상속세 걱정이 쓸데없다고 믿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세법을 뜯어고쳐 세율을 낮춘다 한들 상속되는 것은 재산이지 경영권이 아니다. 경영권은 주주들한테 위임받은 ‘권한’이지 몇몇 가문이 세대에 걸쳐 독점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유지가 그렇게도 걱정된다면 두 가지 중 하나의 수밖에 없다. 세법이 아니라 헌법을 개정하여 왕조를 세우든가, 아니면 이 부회장 스스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리더십을 보여주든가. 물론 그것은 현재와 같은, 존재한다고 주장할 뿐 정작 본 사람 하나 없는 ‘유니콘 리더십’이 아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삼성 일가의 상속세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걱정해야 할까? 그것은 다름 아닌 언론의 자기분열증인 듯하다. 상속세의 본질은 경제적 힘의 세습을 막는 것이다. 상속세의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당화해주는 것은 경제적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다. 전·현직 법무장관의 부모 찬스 의혹을 보도하면서 기회의 공정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말했던 언론이 왜 유독 삼성 혹은 이 부회장의 부와 권력 세습에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이것이 자기분열의 증상은 아닌지 스스로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이 글은 한겨레신문 11월 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