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총희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회계사   작성일시: 작성일2020-08-25   

다시 일상이 멈추어버렸다. 수많은 이들이 공들여 쌓고 있던 탑이 갑자기 무너져버린 기분이다. 이번 학기부터 대학교에서 강의를 맡았는데, 학생들과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강의들도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어, 다시 한 번 수입의 감소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학생들은 친구와의 만남을 잃어버릴 테고 자영업자는 줄어든 수입에 임대료 걱정이 더 커질 것이며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모두에게 우울한 시간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우울한 시간 앞에는 누군가의 잘못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우울해진다. 나의 노력 따위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 때문일까. 모두가 일상을 포기하는 순간에도 자신들의 자유만큼은 버리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신규 확진자가 400명 가까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부 교회들은 현장예배를 강행하고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검사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질병이 특히 취약계층에게 더 악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방역을 거부하는 이들이 정말 신의 말씀을 듣고 있는지 의문이다. 어느 시대에나 신을 팔아 자신의 영달을 취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맹신의 시대가 되어 이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종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정치도, 경제도 강력한 믿음이 지배하고 있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죽어도 기업의 손실부터 걱정하던 사회의 모습은 타인에게 병을 옮겨도 자유를 외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고, 나만 옳다는 생각으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률을 무시하는 행위 역시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 공정거래위원회가 한화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조사 방해 행위에 대해서도 미고발로 의결했다고 한다. 재벌그룹의 이런 조사 방해 행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삼성, LG, SK 같은 대기업들이 조사를 방해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기업엔 무제한의 자유를 제공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의 법과 질서가 무너져도,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도 경제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시장경제, 아니 재벌경제에 대한 맹신이 검사를 거부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정치의 영역은 또 어떠한가. 모두가 입으로는 국민을 말하지만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옳다, 내 편이 옳다는 아집만 보일 뿐이다. 유사한 사안에 대해 남의 편이면 비판하고 내 편이면 감싼다. 상대의 부동산은 투기이고 내 부동산은 재산권 행사이며 기득권은 타파해야 하지만 내 자식은 기득권을 만들게 하고자 한다. 상대에게 일어나면 미투, 우리 편에 일어나면 음모론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사안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판단이 되어 버렸고, 일그러진 영웅들이 각 영역에서 출현하고 있다.

믿음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리고 같은 편이 있다는 것은 심적으로 든든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파편화된 사회에서 더 큰 믿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믿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 편한 믿음보다 용기일지 모른다. 용기를 가지고 상대가 잘한 것은 칭찬하고 우리가 잘못한 것은 비판해야 잘못된 믿음으로 무장한 일그러진 영웅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는 끝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맹신과 아집이라는 병이 계절을 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울 뿐이다. 다시 우상을 숭배하는 시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8월 25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