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가신그룹의 말들에 관하여

이창민 |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 한양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0-08-0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하기가 도를 넘고 있다. 칼럼과 인터뷰가 넘쳐난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삼성전자 전·현직 전문경영인의 활약이다.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장(사장)은 현장점검에서 “전문경영인으로는 불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큰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리더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사내 인터뷰에서 “저도 전문경영인 출신이지만 굉장한 적자, 불황 상황에서 ‘몇조 투자하자’고 말하기 쉽지 않다”고 이 부회장 역할론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황당하다.


첫째, 이러한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교묘하게 비튼다. 지금 우리는 총수와 전문경영인의 역할에 대해 원론적인 토론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벌 총수가 경영권 승계라는 사적 이익을 위해 주주의 이해를 침해한 범죄 혐의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이 재판에서 따져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분식회계, 시세조종 등을 재판도 안 해보고 덮어야 하나? 최고경영자(CEO)의 역할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하다고 해서 기업범죄를 저질렀을 때 봐주자는 주장을 펴지는 않는다. 사적 이익 추구는 심각한 기업가치 침해이자 시장질서 교란행위이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 스티브 잡스, 제프 베이조스에게도 면책특권은 주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언제까지 글로벌기업 전문경영인들의 자기부정을 보아야 하나? 윤부근 전임 삼성전자 CE부문장은 2017년 당시 수감 중이던 이 부회장을 위해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고 사업 재편과 인수합병을 하고 있는데 일개 배의 선장이 할 수 있겠느냐. 제 사업에 대해서는 제가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이 부회장에 비하면 1000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권오현 회장은 243억원(2017년, 스톡옵션 제외), 윤부근 전 부문장은 76억(2017년, 스톡옵션 제외), 김현석 부문장은 26억(2019년, 스톡옵션 제외)의 연봉을 받은 경영인이다. 1000분의 1의 미미한 존재가 왜 이리 고액 연봉을 받으시나? 불확실한 시대에 투자 결정하라고, 큰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하라고 시이오에게 고액 연봉을 주는 것이다. ‘총수 구하기’ 하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


셋째, 이 부회장과 가신 그룹은 여러 모순에 빠져 있다. 이번 검찰과 삼성의 공방 과정에서 2012년 작성된 ‘프로젝트-G(Governance, 지배구조)’ 삼성 내부 문건이 언급되었다. 여기에 인수·합병,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축 등 삼성의 ‘큰 숲’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삼성 쪽은 이 문건 내용은 이 부회장에게 보고되지 않았고 지시받은 적이 없다는 주장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이 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기소하면 안 된단다. 그리고 대체 그 ‘큰 숲’은 왜 이 부회장에게만 보이나? 삼성이 고추장의 비법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신당동 떡볶이 집인가? 필자는 이 부회장의 2000년대 초반 이(e)비즈니스 투자 실패 경험에 대해 비판한 적이 없다. 차라리 과감한 투자 경험이 더 쌓여 있고, 실패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으면 카리스마는 잃었을지 몰라도 경영적으로는 더 큰 것을 얻었을 것이다. 무슨 문제만 터지면 잘나가는 삼성전자 뒤에 숨어 있는 지금과는 다르게 말이다.


넷째, 가신 그룹의 총수 찬가는 결국 봉건적 경영 시스템을 만방에 선전하는 꼴이다. 삼성 정도라면 “우리는 총수가 없어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시장에 말해야 한다. 지난 5월 대국민 사과에서 이 부회장은 경영권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오히려 주변 가신들이 말렸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조선시대 선조의 쇼라 불리는,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선위 파동의 거꾸로 된 버전이 연상된다. 안 물려주겠다는 이 부회장은 진정성이 조금은 보이는데 가신 그룹이 진심을 다해 말리는 것 같다. 백전노장 전문경영인들이 과연 뼛속 깊이 총수 일가의 리더십을 존경할까? 솔직해지자. 그냥 총수가 무서운 거다. 총수의 전방위 인사권을 포함한 무소불위의 권력, 사적 이익을 위해 개별 계열사 이사회, 주주를 무력화시키는 행위가 문제의 본질이다. 지금 상황에서 나머지는 변죽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 8월 3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