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정면돌파

이창민 |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 한양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0-07-21   

정책결정자가 신중하고 합리적이면 좋다. 대부분의 사안에 있어 의견이 충돌하니 토론과 합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대전제는 정책에 대한 철학과 진정성이다. 그것 없이 유연성을 외치는 사람은, 자기는 모두를 만족시켰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모두에게 욕먹게 돼 있다. 또 합리성을 가장했으나 내면에는 복잡한 계산이 있는 경우가 많다. 최악은 여러 이해관계를 반영한다며 애매모호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취지에 맞게 방향을 설정하고 다양한 논리로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게 정도다. 특히 공정사회와 관련한 이슈는 더욱 그렇다. 명분이 ‘공정’인데 우회로를 탈 수는 없다. 그런 걸 우리는 꼼수라 한다. 최근 이슈 중 검찰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기소, 금융위원회의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도입 논란은 정면 돌파가 필요하다.


지배권 승계, 시세조정, 분식회계 등에 관한 이재용 부회장 기소 문제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의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라는 변수를 만났다. 검찰 권력을 견제하려고 만든 제도가 검찰이 거대한 경제 권력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발목을 잡아버렸다. 검찰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욕은 먹을 것이다. 기소를 안 하면 ‘재벌 봐주기’, 기소를 하면 ‘자기 부정’이 돼버린다.

과거 검찰이 수용한 수심위 권고는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인사보복 등과 같은 사건이었다. 삼성 문제와는 다르다. 이 복잡한 분식회계, 시세조정 문제를 그것도 법원이 영장심사를 하며 재판에서 따져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재판도 안 해보고 덮어야 할까. 공정경제 실현에 있어 검찰과 법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재벌 총수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규율 수단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입법 예고한 금융그룹통합감독법은 금융업과 비금융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복합금융그룹을 감독하기 위한 것이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고충은 이해한다. 그러나 곳곳에 문제가 있다. 우선 자본적정성 평가가 이 제도의 핵심이다. 자본적정성 비율을 어떻게 산정하는가에 따라 필요 자본이 달라지는 것인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은 결국 특혜 의혹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시스템이 좋으면 필요 자본을 줄여주겠다고 하는데 이는 한국 재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발상이다. 삼성, 한화, 미래에셋 등이 내부통제가 없어서 문제인가. 그 내부통제를 무력화시키는 총수의 절대 권력이 문제인 것이다. 형식으로 실질을 덮지 말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출자 문제 등을 해결해야 공정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정부는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혁신을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일반지주회사에 CVC를 허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런데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한 금산분리 원칙 및 총수의 사익편취 가능성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문제는 갑자기 중기부가 CVC 허용을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추진하겠다는 거다. 지주회사에 CVC 지배를 허용하되 외부 자금 조달을 억제하고, 사익편취 규제의 적용을 받도록 하며, 투자 내용을 공정위에 보고토록 하는 이용우 의원 법안 등이 제안돼 있는데 말이다. 이건 정말 모든 규제를 피해가는 우회로를 타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평소 재벌 개혁과 금산분리가 철학이었다. 지금까지의 공이 과로 덮일 수도 있는데 이게 본인의 철학을 뒤집으면서 추진할 만큼 가치 있는 정책인가. 뻔히 보이는, 정면으로 공정경제에 반하는 정책은 아예 철회하는 것이 맞다.

​* 이 글은 국민일보 7월 21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