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가 보여주는 ‘공정함’이란 허상

이총희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회계사   작성일시: 작성일2020-06-30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고 한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운영지침을 보면 심의 대상은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이다. 삼성의 승계와 관련된 사안은 사회적 이목이 쏠려 있는 사안이니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 쏟아지는 국민적 의혹은 재판에서 잘잘못을 가리지 않는 이상 해소되기 어려울 것인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불기소를 권고한 것이 바람직한 결정인지 의문이다. 게다가 평범한 시민들의 억울함은 국민적 의혹도, 사회적 이목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수사심의위원회의 운영지침이 공정한 것인지 모르겠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의위원들은 삼성의 경영과 국가 경제의 막대한 피해를 고려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기에 의존하는 기업은 정상적인 기업이라 하기 어렵다. 심의위원들이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을, 그리고 우리나라를 지나치게 저평가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이것이 결정의 근거가 된 것 자체가 공정한 것인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음과 다름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천양지차다. 누군가는 같은 시민으로 법에 따른 준엄한 심판을 바라지만 누군가는 평범한 시민과 재계의 총수는 다르기 때문에 법의 적용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주류적 사고가 후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생존을 위해 이러한 삶의 방식을 청년들이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도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일고 있다. 일각에선 청년들의 잘못된 공정의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공정은 하나의 다름을 모든 영역에서 다른 것으로 평가한다. 죄를 지어도 기업과 국가를 걱정해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영과 준법이라는 전혀 다른 영역을 하나로 묶어 평가한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신분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는 조선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 신분을 나누는 지표가 조금 다를 뿐이다. 우리의 신분은 일급지의 부동산을 소유해 지주가 되느냐는 것과, 정규직이 되어 안정된 신분을 보장하느냐로 갈린다. 그래서 21번의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공정하지 않다고 분노한다. 정부는 이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해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오해 저변에 있는 불신이 근거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정부의 정책을 신뢰한 사람들이 부동산 상승에 분노하는 것만 봐도, 정부의 말과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근거로 충분해 보인다. 나 역시 이들이 옳다 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올바른 선택을 한 이들은 스러져가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선택은 맞는 것 같다. 재벌의 총수라서, 정치인이라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다름’을 쟁취해야 함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특권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여기저기서 갑질을 하는 이들이 나오고, 이들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의 절규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목숨을 버려도 사회적인 분노는 잠시뿐이다. 정치인들은 입으로는 비판하지만 입법으론 바꾸지 않는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니 청년들은 각자도생할 뿐이다. 청년들에게 짱돌을 들고 거대한 기득권과 맞서라고 말하지만, 당장 자신에 대한 도전은 가차 없이 짓밟아 버린다. 제도의 변화가 아닌 강자의 시혜에 기대어 살도록 사회를 만든 사람들이, 과연 누굴 비판할 수 있을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한국적’ 공정의 뿌리를 뽑지 않는 이상 이는 공허한 울림으로 남게 될 것 같다.

​* 이 글은 경향신문 6월 30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