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의 회계투명성

이총희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회계사   작성일시: 작성일2020-06-02   

정의기억연대의 문제로 회계투명성이 핫이슈가 되었다. 회계투명성을 외치며 10년을 다퉈온 입장에선 회계투명성이 올라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왜인지 정의연의 회계투명성 논란은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이달에 있을 공인회계사회 회장 선거의 주요 공약은 어느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외부감사법 사수’다. 무슨 내용이길래 죽음을 무릅쓰고 지켜야 하는 것일까? 쉽게 설명하면 회계투명성을 올리는 법이다. 기업이 회계사를 선정하다 보니 회계사들은 기업의 눈치를 보게 되고 독립적인 감사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감사 품질보다 저가 보수에 관심이 많으니 저렴한 가격에 맞춰 시간도 많이 투입하지 못했다. 그래서 표준감사시간을 정하고, 기업의 감사인 선임권한을 일부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었는데 그게 신외부감사법이다. 사회가 이렇게 회계투명성에 관심이 많은데, 회계투명성을 위한 법안을 왜 사수해야 하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이 법은 기업의 반발로 통과부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시행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감사가 강화되어 기업 하기 힘들다 하고, 언론들은 연일 기업의 부담을 말하며 감사인이 ‘갑질’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회계사회 회장 후보들이 법안을 ‘사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 자료를 요구하고, 문제가 있는 기업에 감사의견을 주지 않은 것이 갑질이라면 언론도 지금 정의연에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규모 비영리단체에 적용되는 잣대보다 기업들에 덜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정의연의 직원이 영수증 공개는 가혹하다고 한 말은 당연히 잘못된 주장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회계감사를 다녀본 기업의 십중팔구, 아니 열이면 열이 모두 저런 태도였다.

혹자는 기업은 비영리단체와 다르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회계투명성에 놓인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모두가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것. 누구나 나의 사정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남의 돈을 가져다 쓰면 투명해야 한다는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이 원칙을 얼마나, 어떻게 적용할지는 우리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회계투명성이 꼭 100점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80점도 좋고, 90점도 좋다. 대기업엔 90점을, 중소기업에는 70점을 요구할 수도 있다. 다만 설정한 점수가 그때그때 달라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편과, 네편의 점수가 달라서도 안 된다.

그 점에서 언론에 아쉬움이 참 많다. 공익법인의 문제를 파헤치고 싶다며 기자들이 도움을 요구한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진보단체를, 진보언론은 보수단체만을 가져와서 재무제표의 문제를 물어본다. 달을 가리켜야 할 사람들이 손가락만 보라 하고 있다. 게다가 기준도 매번 달라진다. 2015년에는 대우조선해양의 회계부정으로 인해 회계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사실 신외부감사법도 이러한 사회적 압력 덕분에 통과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해, 언론들은 회계사들이 엄격하게 감사한다며 회계사들의 기업 죽이기라고 비판했다. 회계투명성에 대한 합격점수가 항상 달라지니, 현장의 회계사들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불투명한 회계처리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기준이 없는 회계투명성이다. 감독기관은 문제가 발생한 후에 ‘정의의 사도’처럼 나타나지만, 사실 기준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하고, 지도하지 못한 그들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 이해 못할 회계서식, 과세의 편의를 위한 서식이 아니라 기부자들도 알기 쉬운 서식을 만들어서 배포했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졌을까 싶다.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기부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 정의연에 주어진 숙제다. 하지만 회계투명성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주어진 숙제다. 투명성의 논란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전진하는가, 퇴보하는가의 문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자기편의적 투명성의 틀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 6월 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