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시장 접근법

이창민 |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 한양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0-05-27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 토마 필리폰(미국 뉴욕대)은 1999년 처음 유학 왔을 때와 20년이 지난 지금의 미국 모습을 비교한다. 20년 전 미국에선 비슷한 상품과 서비스를 유럽에 비해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 서비스 월간요금(2018년 기준)은 프랑스가 31달러인데 미국은 68달러이다. 유럽이 저가항공사들의 진입을 허용해 경쟁을 촉진하는 사이, 미국 항공사들은 인수합병을 거듭했고, 항공사 수는 줄어들었다. 결국 입법·행정 당국의 태도 차이가 시나브로 역전을 가져왔다. 그는 “미국은 더이상 자유시장 경제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사회주의 등으로 묘사할 때, 나는 좀 당황스럽다. 아직도 미국은 시장경제의 성지, 유럽은 공짜 점심만 좋아하는 집단으로 여기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 20년 동안 조금씩 변해왔다. 예전과는 인적 구성이 사뭇 다르고, 생각의 스펙트럼은 넓어져만 간다. 이제 모호해지는 방향타를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경제문제에 접근하는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해 본다.

우선, 입법자로서 적당한 거리두기부터 하자. 시장은 규율 없는 진공상태에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그 제도를 만드는 사람이다. 586세대는 경제를 모른다고 욕을 먹었지만, 이제 민주당은 시장 맹신주의자들이 시니컬한 언어로 잘난 척하는 거 무시하시라. 또 입만 열면 규제 완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잘 구별하자. 시장 안의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이들이 많다. 최근 미국은 거대 기업들의 정치·경제적 권력 독점이 이슈이다. 정치 기부, 로비 등을 통해 탈규제라는 명분으로 제도를 뒤틀고 시장의 활력을 죽이고 있다. 경쟁촉진 법안을 틀어막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어떤가? 대통령은 욕해도 재벌은 욕하지 못하는 사회가 된 지 제법이다. 암묵적 로비의 방법은 다양하다. 벌써 국회의원들에게 선을 대고 있을 것이다. 독점권력 개혁은 법원, 검찰, 국가정보원만 필요한 게 아니다.

두 번째,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는 구분하자. 교과서에 나오는 효율적 시장의 조건은 대략 진입과 퇴출의 원활함, 충분한 경쟁, 충분한 정보 등이다. 이 조건을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만들자는 것이지 마약하는 오너 4세 욕하고 기분 내자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우리는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 항공, 제약, 통신, 플랫폼 등의 독과점 기업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미국 의회라면 대기업집단을 봐야 하는 게 한국 의회이다. 대기업집단은 평균 36개의 금융과 비금융 전 산업에 걸쳐 있는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깔끔한 지배구조를 만들고자 도입했던 지주회사는 누더기가 돼버렸다. 대마불사라 함부로 퇴출도 어렵다. 총수는 경영권 경쟁으로부터 보호받고, 실제 그룹 차원의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시장은 모른다. 이런 시장에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까?

세 번째, 유행과 시기에 너무 민감하지 말자.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경제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지를 가지고 일도양단으로 갈라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 민족 등은 무조건 규제를 받지 말아야 하나. 유행 따라 한쪽으로 쏠리면 결국 시장에서 그 비용을 치르게 마련이다. 또 한 가지. 지금은 경제위기 극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위기극복의 주도권은 청와대와 행정부에 있다. 청와대가 단기 경제정책에 힘을 쏟는 사이, 의원들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 법·제도 개선도 행정부의 시행령 개정에 의존할 것인가. 겸손도 좋지만 대통령 뒤에 숨어서는 정권 재창출 못 한다.


​* 이 글은 국민일보 5월 27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