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를 위한 변명

최한수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20-04-23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 대상을 놓고 정부와 여당이 ‘전원지급 후 자발적 반납’으로 합의했다. 지원의 시급성을 고려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까지 선별지원을 고수한 정부의 태도는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공자는 ‘정치의 요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물의 이름을 정확히 쓰는 것이라 답했다.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재난수당’이었다면 아마 큰 논란이 없었을 것이다. 몇몇 자치단체장이 이를 ‘재난 기본소득’이라 잘못 명명한 뒤 문제가 시작되었다.

코로나19 시대 재정의 최우선 과제는 피해를 입은 계층을 신속하게 그리고 가능한 한 충분한 수준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위험에 노출된 경제주체의 소득 변동성을 줄이는 것은 사회안전망, 특히 ‘실업보험’의 역할이다. 위기에 직면한 여러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실업급여의 수급 기간과 액수를 늘리고,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처럼 이 제도 밖에 있는 사람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도 이를 기본소득이라고 하지 않는다.

만약 도시가 봉쇄된 미국이나 유럽이라면 보편지급이 타당하다. 지난 4주 미국의 실업수당 신규 신청자는 2200만명이었다. 2009년 금융위기의 8배 수준이다. 이에 근거한 예상 실업률은 18%인데 이는 2009년의 10%를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대공황 시절의 25% 수준도 넘어설 수 있다. 우리는 다르다. 충격은 크지만 아직까지는 고용형태와 산업에 따라 이질적이다. 따라서 지금은 적절한 선별을 통해 가능한 한 높은 수준의 지원을 빠르고 지속적으로 주어야 한다. 기존 실업급여 외에 사업주에 대한 고용유지 지원금이나 재난지원금 같은 현금 이전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재난 ‘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논란이 발생한다. 보편복지제도로서의 기본소득이라면서 왜 30%를 제외해야 하느냐 묻는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정책은 강화된 고용보험이다. 따라서 이는 급여를 안정적으로 받는 노동자가 나는 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가라고 묻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혹자는 선별비용 때문에 전체 지급 후 세금환수를 주장한다. 경청할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 ‘조삼모사’ 논쟁은 차치하고서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소득 구간부터 회수할지의 문제가 있다. 최고 세율이 42%이기 때문에, 100만원을 받은 상위 1% 가구도 58만원을 갖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을 통해 이들의 재난 기본소득을 100% 환수해야 한다. 그런데 행정비용을 줄이는 것이 세법의 역할인가.

현 시기 선별의 필요성은 재정건전성에 있지 않다. 지금은 재정을 확실하고 과감하게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가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자주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별의 정당성은 같은 비용으로 도움이 절실한 계층에게 더 큰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1인당 20만원을 지급하는 데 10조원이 든다. 같은 예산으로 중위소득 이하 가구만 줄 경우 1인당 40만원이 가능하다. 그 선별비용이 5천억원이라 하자. 그래도 1인당 38만원이다. 모든 정책은 비용과 편익을 발생시킨다. 선별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지원 금액이 커진다면 지금의 정부 입장은 정당화될 수 있다. 신속성 역시 상대적이다. 서울시는 선별지급이고 경기도는 전면지급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미 돈을 받은 서울시민도 있고, 아직까지 받지 못한 경기도민도 있다. 그 차이는 대상자가 지원의 경계선에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정말로 도움이 절박한 많은 서울시민은 이미 지원을 받았다.

‘재난 기본소득 논쟁’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정부 위기대응의 잘잘못이 오로지 모두에게 1회성 현금을 지급하느냐에만 달려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소득보장 외에 고용의 안정,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기업 지원, 금융 및 외환 시장 안정화 정책 등을 모두 묶어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세부 정책의 미흡함은 있지만 정부의 지금까지의 대응은 그런 방향이었다. 오늘 발표된 일자리 위기 극복을 위한 고용 및 기업 안정 대책이 이를 방증한다. 누군가는 코로나19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환경이 기본소득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위기에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은 기본소득 실험자로서의 정부가 아니라 소득 및 고용 안정화 정책의 최종 비용 부담자로서의 정부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 4월 23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