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사재기와 일자리 사재기

이총희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회계사   작성일시: 작성일2020-03-10   

3월은 주주총회가 열리는 시즌이다. 주주총회에는 다양한 안건이 오르는데 그중 하나가 기업의 이사·감사를 선임하는 것이다.

안건을 통해 여러 후보자들을 보게 된다. 교수, 법조인, 퇴직관료의 지분이 가장 높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 한 회사에 충성한 사람, 좋은 친구를 두어 자리를 얻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게 된다. 그중 한 사외이사 후보자의 모습은 코로나19 사태로 혼란한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지면을 빌려 이 후보자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처음 이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국회의원까지 하셨기 때문이다. 선거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사외이사 후보로 올라온 것을 보니 불출마 대열에 참여하신 분이라 생각했다. 양심 있는 정치인이니 사외이사 후보로 손색이 없겠다는 기대로 후보 명단을 검색해봤다. 나의 기대와 정반대로 예비후보 등록까지 하셨다. 사외이사의 임기는 3월 말에 시작되고, 선거는 4월이니 나라면 선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사외이사를 거절할 것 같은데, 역시 뛰어나신 분은 다르다. 이렇게 뛰어난 데다 열심히 사시는 분은 대체 누구인가 싶어 인물 정보를 더 탐색해 보았다.

이분을 보니 ‘노오력’이 부족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관료를 퇴임하자마자 그 좋다는 공기업 사장이 되셨는데 그 자리를 박차고 18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시더니, 낙선 후 다음해에 C기업의 사외이사가 되셨다. 하지만 이분은 기업의 경영을 하면서도 국가 경영을 잊지 않으셨나보다. 사외이사 임기 중에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셨다. 이력을 보니 선거 중에도 사외이사는 사퇴하지 않으셨다. 낙선에 대비해 보험용으로 사외이사를 남겨놨다고 생각했는데, 이분은 당선된 이후에도 의원 임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외이사직을 수행하셨다. 역시 봉황의 뜻을 나 같은 참새는 알 수 없다.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는 그 순간까지도 회사를 위해 충실히 이사의 업무를 수행하려던 분을 내가 오해했다.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렇게 4년의 임기를 마치고 이분은 다시 야인이 되셨다. 하지만 낭비를 모르시는 이분은 그 해에 법무법인의 고문이 되셨고, 또다시 S사의 사외이사직을 맡으셨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어려운 자리인데도 동시에 두 자리를 하셨다. 그러면서 사외이사 임기 중에 또다시 20대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하셨다. 물론 사외이사는 사퇴하지 않으셨다. 낙선을 하고도 계속 사외이사를 하고 계신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21대 국회의원 선거와 사외이사 연임을 동시에 하려 하신다. 아마 이번에도 당선된다면 임기 시작 전까지 기업을 위해 노력하실 것 같다. 국가와 기업을 위하는 이분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지만, 건강이 걱정돼서라도 한 자리는 내려놓으셨으면 좋겠다.

주위를 둘러보면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어딘가에는 여러 자리를 겸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것도 좋은 자리로만 말이다. 서민들이 약국을 돌며 몇 장 안되는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것은 비난받는데, 일자리가 부족한 사회에서 높은 분들의 일자리 사재기는 괜찮은지 모르겠다. 능력이 있어 겸직을 하는 건 괜찮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매크로를 돌리는 것도 능력이고 약국을 순회하는 것도 노력이다. 사외이사는 지배주주나 경영진을 견제하여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자리이지 정치인이 사재기하라고 둔 자리가 아니다. 선거를 하며 기업에서 급여를 받던 분이, 균형 잡힌 입법을 하고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시민들은 불안한 와중에 성금을 내고 마스크를 기부하기도 한다. 이런 시민들을 대표할 사람이라면 선거 전에 사외이사를 제안받아도 스스로 거절할 수 있는 사리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사외이사 후보자만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 3월 10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