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주인을 찾아주면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 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09-09-16   

산업 자본이 은행과 은행지주사 의결권 있는 지분을 9%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그 시행령이 예고돼 구체적인 적격성 심사 요건들이 논의되고 있다. 재계는 이런 은산(銀産)분리 완화 움직임에 환영을 표하면서도 그 완화 폭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정부도 은행 주식 보유와 관련해 사전적이고 획일적인 규제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현실적 제약 때문에 불가피하게 한도를 설정한다는 입장이다.은행에 오너를 찾아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바람직하다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그동안 학계에서는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경영하는 것에 여러 문제점을 지적했다. 은행의 사금고화, 경쟁 기업에 대한 불공정 행위, 은행을 인수한 일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그리고 이에 따른 은행 감독 약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고 있는 다른 중요한 문제점이 하나 더 있다. 은행에 오너를 찾아주면 가장 보수적으로 운영돼야 할 은행들이 오히려 고위험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은행처럼 부채비율이 거의 90%에 달하는 기업의 경우, 주주들이 고위험을 추구할 확률이 매우 크다는 이론은 이미 1970년대에 정립됐다. 고위험을 추구해 운이 좋아 기업 가치가 올라가면 주주들이 큰 이득을 챙기고, 운이 나빠 기업 가치가 떨어지면 유한책임으로 주주가 아닌 채권자들이 손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동전을 던져 앞이 나오면 내가 이기고 뒤가 나오면 네가 진다(Heads I win, tails you lose)의 불공정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대주주가 은행 경영에 직접 참여할 때, 예금자보호로 채권자 견제가 없을 때 더욱 심해진다.


이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들도 축적되고 있다. 1990년 미국 저명 학술지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1978~85년 동안 미국의 38개 은행지주회사를 분석한 결과 경영진의 지분이 늘어날수록 해당 은행이 고위험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발표된 또 다른 저명 학술지 논문에 따르면, 2001년 기준으로 48개국 279개 민간은행을 분석한 결과 은행에 대주주 지분이 늘어날수록 해당 은행이 고위험을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앞서 설명한 이론적 예측이 미국에서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에서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위의 논문은 은행의 고위험 추구 억제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각종 규제들이 은행의 소유 구조가 분산돼 있을 때만 유효하고, 대주주가 있을 때는 역효과만 초래한다는 실증적인 분석 결과도 내놓고 있다.즉, 은행의 자기자본 규제나 영업상 규제가 강한 나라일수록 대주주의 고위험 추구 성향이 오히려 더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규제는 은행 소유에 따른 편익을 감소시키는데, 이를 보상받기 위해 대주주가 영업에서 고수익·고위험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서 논문은 예상대로 예금자보호제도가 도입된 나라일수록 대주주의 고위험 추구 성향이 더욱 높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이론적 예측과 실증적 분석 결과들은 최근의 은산분리 완화 정책과 관련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먼저, 은행에 오너를 찾아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은행들의 고위험 추구는 경기 하강기에 은행 도산과 경제위기만 초래할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초 정부가 은산분리 완화 내용을 담은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내놓은 것도 시기적으로 부적절해 보인다.


둘째, 은행에 대주주가 있는 경우 고위험 추구 억제를 위한 정부의 각종 규제들이 오히려 역효과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에 대주주가 등장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게 최선책이라는 것이다. 이미 9%까지 인정한 것을 되돌릴 수 없다면 새로 등장하는 대주주가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적격성 심사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매경이코노미 2009.09.16일자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