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의 삼성, 삼성의 준법

이총희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회계사   작성일시: 작성일2020-01-14   

회계사 생활을 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간 참 많은 기업을 만나고 다녔다. 새로운 기업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유쾌하지 못한 경험도 많았다. 내가 맡은 역할이 감시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유쾌하지 못할 일도 없다. 기업들이 법을 준수하고, 회계기준을 잘 지키고 있다면 쿨하게 보고서에 사인하고 인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회사들은 백이면 백, 자신들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공감이 가는 것들도 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특히 오너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기준을 위배하려는 경우가 그렇다.


그래서 한국의 법은 금지하는 행위가 참 많다. 현장에서 기업인들을 만나면 이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소수의 문제로 왜 전부를 규제하냐고 항변한다. 법 다 지키고 어떻게 사업하냐고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우리가 못 참는 것이 ‘내로남불’이다. 왜 작은 회사들만 엄격히 보냐며 대기업을 좀 그렇게 감시하라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듣다보면 민망하기도 하고, ‘그래도 대기업은 잘하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기업들은 일을 잘하다 못해 범죄도 세련되게 한다. 그러다보니 사건이 터지면 크게 화제가 되고 법이나 규정이 강화되는 경우도 많다.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되었고 감사위원회도 생겼다. 2011년에는 금융회사에만 있던 준법감시인이 상법에 준법지원인이라는 제도로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의 풍년도 오너를 멈추진 못했다.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비판은 매년 반복되고 있고, 감사위원회가 역할을 못한다는 이야기는 부정이 터질 때마다 나온다. 덕분에 사외이사의 자격을 제한하는 조항은 점점 길어져 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외이사 제도가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 제도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법을 형식적으로만 준수하기 때문이다.

삼성에서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든다고 한다. 선임되신 분들의 면면도 매우 화려하다. 일단 그 의지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지만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삼성이란 실체는 무엇일까?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라고 하는데 삼성그룹에 속한 개별 회사들은 대부분 법률이 요구하는 가장 강력한 제도를 다 갖추고 있다.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준법감시인. 그리고 외부감사인도 감독당국의 지정을 받아 바꾸기도 했다. 이렇게 법에 따른 기관들도 못하는 일을 법적 근거가 없는 기관이 잘할 수 있을지 사실 걱정이 된다. 내가 만난 수많은 회사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모두의 가장 큰 문제는 회사를 사적 소유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한 탓이지 위원회가 없거나 법이 없어서 문제였던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는 그룹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추상적인 그룹이란 실체의 이익은 과연 그룹의 이익일까, 총수 개인의 이익일까. 이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준법감시위원회가 현행 법률보다 강력한 사외이사 자격제한이나 불법행위자에 대한 취업제한, 회사를 활용하는 총수의 지배권 강화 행위 등을 제한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구심은 조금 해소될 것이다. 그리고 권고가 지켜지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명확히 밝혔으면 좋겠다. ‘충분한 조언을 듣고 깊이 고민했으나 현실의 한계가 있었다’류의 이야기는 이제 너무 식상하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월 14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