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총수의 결단을 기다린다

이창민 |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9-04-02   

지난주 한국 재벌 역사에 초유의 사건이 있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됐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전격 퇴진했다. 드러난 이유는 조금씩 다르다. 조 회장의 경우는 배임, 횡령 연루에 대해 국민연금 등 주주들이 기업가치 훼손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박 회장은 회계 문제로 금융시장 신뢰 상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주목해야 할 것은 주식시장의 반응이다. 두 총수의 퇴진 발표 이후 회사의 주가는 상승했다. 박 회장의 경우 발표 직후 12%까지 올라갔다. 더 재미있는 현상은 대한항공의 경우 연임 부결 다음 날 주가가 하락한 것이다. 조 회장의 실질적 영향력이 여전하기 때문에 회사의 본질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영향을 미쳤다. 결국 시장과 사회가 지목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총수와 가신 중심의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지배구조를 제대로 바꾸라는 것이다. 그것은 총수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땅콩 회항 사건이 일어난 게 2014년 12월 5일이다. 5년 전이다. 그동안 조 회장은 무엇을 한 것일까. 시장에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된 지 이미 오래다. 다른 대기업집단도 정도 차이일 뿐이다. 우선, 대기업집단들은 총수 일가와 가신 중심의 세습 경영에 대해 시장에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대기업집단의 규모는 너무 커졌고, 대표 기업 몇몇 뒤에 숨은 수천개 계열사의 생산성은 의문부호다. 총수 중심 의사결정체제는 한계에 왔다. 미국 기업 연구 결과를 보면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비즈니스 유닛이 많을수록 CEO가 의사결정을 아래 집행임원들에게 위임한다. 또한 총수 일가 3~4세가 창업주에 비해 기업가 정신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미국 기업도 비슷한 라이프사이클을 겪었다.

총수가 손을 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총수는 그룹 차원의 지배구조 재편과 전략적 방향 설정에 집중하는 게 좋다. 조 회장의 배임, 횡령 연루 등은 복잡한 지배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개별 계열사의 주요 의사결정은 계열사 이사회에 넘겨야 한다. 특히 CEO 선임, 해임 권한이 그렇다. 모든 인사권을 쥐고 전체 그룹을 쥐락펴락하는 것과는 작별하자. 인사권을 놓지 않은 전문경영인 전면 배치, 이사회 중심 경영은 허상이다. 이사회는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CEO로 선별할 수 있는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작동시켜야 한다.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단계부터 독립성 있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채널로 후보 제안을 받는 게 좋다. 주주들에게 제안을 받고 그들 중 몇 명은 사외이사가 반드시 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자.

여기서 참고할 만한 게 워런 버핏 식 모델이다. 본인이 언제 물러날지 시장에 명확히 밝히고, 자식에게는 경영권 대신 이사회 멤버로서 회사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경영권 승계를 받을 두 명의 CEO 후보를 시장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총수 일가 3~4세가 직접 경영을 하고 싶으면 도전과 모험이 필요한 혁신 벤처기업이 좋을 것 같다. 총수 일가의 장기적 시야, 추진력 등이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다. 또한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드는 한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다.

두 번째, 대기업집단은 주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번 대한항공 주총에서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해외 연기금인 플로리다연금,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도 한몫했다. 많은 소액주주들의 힘도 더해졌다.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인 글로비스-모비스 합병은 주주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과 시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엘리엇은 올해 현대차 주총에서 여러 주주제안을 내놓았으나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완승으로 끝났다. 정 부회장 체제의 경영 방식과 지배구조가 이상적이라는 게 아니다. 때로는 주주의 의견을 듣고, 때로는 주주의 제안에 반박하면서 가는 것이 경영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집단 3~4세 경영시대다. 금수저로 특권도 많이 누렸지만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노력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은 유전적 행운이라는 것이다. 성공은 자기 덕분, 실패한 사람은 남 탓 한다는 말처럼 성공한 사람은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주변의 가신들은 직언하지 않는다. 시장과 사회와의 소통 속에 한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 이 글은 국민일보 4월 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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