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엘리엇, 퇴보하는 삼성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10-25   

엘리엇이 이번에는 삼성전자를 겨냥했다. 엘리엇의 105일자 공개서한을 읽어본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화’(evolution). 작년 이후 엘리엇은 한국사회와 한국기업에 대해 많은 것을 학습했고, 그 결과 자신의 전략을 스마트하게 진화시켰다.

 

합병 부결 정족수에 2.86%포인트 미달하는 박빙의 승부를 펼쳐 삼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사실 작년의 엘리엇은 무척 서툴렀다. 삼성물산은 독립기업이 아니라 그룹의 핵심회사다. 삼성물산 주주에게 유리한 제안이라도 그룹 전체의 이해관계자로부터 꼭 환영받는 것은 아니라는, 한국 재벌의 지배구조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예컨대,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은 삼성물산의 주주이지만, 동시에 삼성전자의 주주이면서 그룹의 미래에 더 큰 이해관계를 갖기 때문에, 엘리엇에 동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아가 삼성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힘을 과소평가했다. 애국심 마케팅을 통해 국내 언론과 지식인들을 자기검열로 몰아넣고, 국내 기관투자가는 물론 개인투자자들까지 일일이 포섭하는 방어 전략을 펼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은 진화했다. 이번 공개서한에 담긴 네 가지 제안, 특히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제안은 내심 삼성도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이고, 시장도 응당 환영하는 일이다. 적대적이기는커녕 대단히 우호적인 카드를 꺼냈다. 엘리엇의 변신(?)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겠지만,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전략을 이해한다면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늑대무리 전술이라는 게 있다. 늑대 한 마리는 사슴을 사냥하지 못한다. 무리를 이루어야 한다. 혼자서도 주총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지분을 매집하여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기업사냥꾼 방식은 헤지펀드의 전형적인 전략이 아니다. 특히 삼성전자와 같은 거대기업의 경우에는 헤지펀드들만의 무리로는 별 의미가 없다. 지분의 대부분을 보유한 연기금 등의 장기투자자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장기투자자들도 환영할 우호적인 내용을 제안하는 것이 헤지펀드의 기본전략이다. 작년에는 서툴렀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하는 셈이다.

 

엘리엇의 105일자 공개서한은 내년 3월 정기주총을 겨냥한 것이다. 제안 내용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해서는, ‘0.5% 이상의 지분‘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가 주총 6주 전까지공식 주주제안서를 제출해야 한다. 엘리엇은 삼성전자 보통주 0.62%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3월 중순 정기주총일로부터 6주 전 주주제안서 접수 및 6개월 주식보유 요건을 감안하면 올 8월 이전에 이 주식을 사 모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을 등기이사로 선임하는 1027일 임시주총에 즈음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효과 만점이다. 이제부터 내년 초까지 더 많은 무리를 모으기 위해 주주제안 내용을 가다듬고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홍보·설득하는 작업을 펼칠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삼성의 방어 전략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엘리엇의 제안을 모두 수용할 것이 아니라면, 건설적 대안을 내놓고 투자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작년 삼성물산 합병 때 자사주를 KCC에 넘기는 근시안적인 수단으로 모든 해외 장기투자자들을 돌아서게 만든 것과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엘리엇을 대머리독수리’(벌처펀드)로 비난하는 애국심 마케팅을 재연할 어리석은 생각은 버려야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025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