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해체해야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10-04   

최근 IMF에서 나온 보고서들을 보면, 한국은 더 이상 모범생이 아닌 지진아다. 지난 812일 발표된 한국과의 연례협의’(Article Consultation) 보고서는, 외교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가면 한국경제 망한다는 행간의 뜻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 및 부실 심화에 대해 여과 없이 지적했다.

 

한편, 829일 발표된 세계금융안정보고서의 부속보고서는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여타 신흥국에 비해서도 후진적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분석대상 20개국 중에서 투자자 보호(8)와 재산권 보호(9) 2개 항목에서만 중간 순위였고, 소액주주 보호(20), 공시 수준(15), 회계감사 기준(16), 규제의 법제도적 효율성(17) 등 나머지 4개 항목은 최하위권이다. 과거에 비해 크게 후퇴했고, 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 등의 아시아 신흥국에도 밀렸다.

 

한국 기업이 비즈니스와 지배구조의 양 측면에서 위기에 직면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IMF만이 아니다. 최근 내가 만나본 외국투자회사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고 말한다. 규모는 중국에 비교할 수도 없고, 다이내믹스 측면에서도 동남아 국가들에 뒤처진 지 오래라는 것이다. 전략적 관점에서 장기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기 시황에 따라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는 시장이 되었다는 의미다. 한국경제를 보는 외부의 시선이 너무나 싸늘하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관련 논란이 그 단적인 증거다. 재계 단체의 맏형이라는 전경련은 마치 일수 수금하는 사채업자처럼 기업들을 들쑤시고 다녔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53개의 대기업들은 전전긍긍하면서 줄을 서서 돈을 냈다. 이런 아수라장에서 무슨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것이며, 이런 무법천지에서 무슨 기업지배구조 장치가 작동하겠는가.

 

10억원 이상의 출연금을 낸 23개 기업에 경제개혁연대가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기부금 관련 규정의 존재 여부, 이사회 보고 및 의결 여부, 출연 결정의 근거 등을 물어보았다. 주주로서 법적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질의서 준비를 위해 해당 기업의 공시 내역을 일일이 체크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절망감을 느꼈다. 의사회 의결을 거친 기업은 단 하나뿐이었고, 윤리위원회 등의 이사회 내 하부위원회에 보고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기업도 소수에 불과했고, 나머지 대다수 기업은 아무런 공식 절차도 없이 그냥 돈을 낸 것으로 확인된다.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전경련이 각 그룹의 회장비서실 등 비공식적 참모조직에 일정 금액을 할당(?) 요구하고, 각 그룹은 보험 차원에서 출연을 결정하여 산하 계열사에 지시하고, 각 계열사의 실무라인은 이사회 등의 공식 절차를 무시한 채 그룹 지시 사항을 수행한 것이다.

 

이게 한국 대표기업들의 현주소다. 출연 금액이 이사회의 의무적 의결 요건에 미달한다는 항변은 핑계에 불과하다. 기업의 잠재적 위험을 관리하는 내부통제장치를 구축하는 것이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들의 답변 여부 및 그 내용을 보고, 추가적인 법적 대응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적극적인 설명과 전향적인 개선 노력을 기대한다.

 

전경련 뒤의 정치실세 등에 대한 의혹은 이미 정치 이슈가 되었고 검찰도 수사에 들어갔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마지막으로, 전경련 문제가 남는다. 전경련은 1961년 설립되어 한국의 경제개발 과정을 이끈 주역이라고 자평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존립 근거를 잃었다. 21세기 한국경제는 더 이상 전경련의 과거 역할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자정능력을 잃었다. 소수 재벌의 기득권이 아닌 전체 기업의 이익을 공정하게 대변하는 단체가 되어야 했고, 이익단체로서만이 아니라 회원사에 대한 자율규제기구로서의 위상을 정립해야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혁신TF를 만들고 외부용역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젠 정치권의 요구를 기업들에 강요하는 양아치로 전락했다. 회원사들의 무관심 속에 내부 상근자들만의 조직으로 퇴화했다. 스스로 강변해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전경련은 이제 해체해야 한다. 그 출발점으로, 문제가 된 두 재단의 해산 및 새로운 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전경련은 완전히 손을 떼고,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04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