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정치경제학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09-13   

한진해운 사태, 우리 사회의 지적 역량이 어떤 수준인지 그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법정관리 신청 이후의 물류 혼란에 대비한 비상계획이 없었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이른바 식자층의 얄팍한 모습에 더 큰 좌절감을 느낀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안된다고 떠들던 사람들이 정부의 자금지원을 촉구하거나 심지어 법정관리 자체가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비난했다. 언론(과 거기에 한줄 코멘트를 다는 지식인들)이 특히 그러했다.

 

솔직히,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은 외통수였다. 무엇이 최선이었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선택은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우선,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한 서별관회의 자료 및 회계법인 실사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정치적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다. 관료와 국책은행의 손발이 묶였다. 한편, 동병상련의 현대상선에는 현대증권 매각대금이 들어오면서 실낱같은 숨통이 트였는데, 그게 한진해운에는 독이 되었다. 한진그룹과 조양호 회장은 동일 수준의 자구노력을 이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대안이 있었겠는가.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 시한은 84일이었으나, 한 달간 연장되었다. 그 한 달은 예정된 결론을 공식화하는 데 필요한 명분을 축적하는 기간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다. 지난 7, 8월 동안 내가 만나본 적지 않은 수의 관료와 금융인 모두가 법정관리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는 폄훼해서는 안되는 소중한 성과다. ‘자구노력 없이는 구제금융도 없다는 원칙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되돌려서는 안된다.

 

문제는, 비용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행위를 비판하는 단계에는 이르렀으나,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법제도와 관행을 만드는 것은 요원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모두가 자기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복지부동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구조조정 비용이 폭증하고 있다. 한마디로 컨트롤타워의 붕괴다. 법정관리 신청 이후의 물류 대란도 그렇지만, 긴급 운영자금 공급 주체를 둘러싼 줄다리기도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각자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제어하고 협조적 전략을 펼 때 해당 부실기업의 더 많은 부분을 살려낼 수 있고, 따라서 모두의 손실을 줄일 수 있는 포지티브섬 게임이다. 협조적 전략의 관건은 기업가치를 유지·제고하기 위한 신규 자금의 공급’(DIP financing)이다. 자금 없이 기업을 경영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를 위해 현행 통합도산법은 법정관리(회생절차) 개시 후에 제공된 신규 자금은 공익채권으로서 우선변제권을 인정하고 있으나, 실무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통합도산법상의 법정관리보다는 기촉법상의 워크아웃이나 심지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자율협약을 활용하려는 유혹, 즉 관치금융이 횡행했던 것이다.

 

그럼 작금의 한진해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조양호 회장과 한진그룹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물꼬를 트지 않으면 (국책은행을 비롯한) 그 누구도 신규 자금을 공급할 수 없고,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반론이 있다. 주식회사의 유한책임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회사법의 원리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유한책임의 원칙은 무과실 (외부)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경영권을 행사한 지배주주, 특히 불법·부당행위로 부실을 초래한 지배주주를 면책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점에서는 조양호 회장뿐만 아니라 알짜자산을 빼돌려 계열 분리한 최은영 회장도 포함된다. 이들이 신규 자금을 공급하여 회사의 회생에 기여하는 것은 도의적 차원이 아니라 법률적 책임의 문제다.

 

대한항공 등 계열사들도 책임이 있다. 이들 계열사는 특수관계 주주이며, 대여금과 물품을 공급한 기존 채권자이기도 하다. 내부 채권자는 주주와 동일한 법적 책임을 진다는 것이 선진국 도산법의 원리다. 따라서 한진해운의 계속기업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신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이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아 손실을 키운다면 그것이 오히려 배임이 될 수도 있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중요하다. 과거의 관치금융과 작금의 복지부동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그 전제조건은 최종 결정권자로서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913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