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변호사·회계사 망국론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08-23   
국제신용평가사 S&P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올렸다. 한국보다 신용등급이 더 높은 나라는 독일, 캐나다, 호주, 미국 등 4개국뿐이다. 호들갑 떨 이유는 없다.

신용등급은 부도위험(default risk)을 나타내는 지표로, 재정건전성이 양호하고 경상수지가 흑자를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대내외 채무를 불이행할 위험이 낮다는 걸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높은 신용등급이 경제의 활력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1997년처럼 한순간에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죽는 줄도 모른 채 서서히 죽어가는 ‘온탕 속의 개구리’일 수는 있다. 전자보다 후자가 더 우려스럽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어느 순간에 변화를 위한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은 교수·변호사·회계사 등 이른바 전문 직업인들에 대해 한마디 하겠다. 이들은 직접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의사결정자들의 판단에 근거가 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정치인·관료·기업인처럼 전면에 부각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 책임은 가볍지 않다. 이들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더구나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나라든 기업이든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을 것이다.

요즘 신문을 뜨겁게 달구는 주요 현안들에서 교수·변호사·회계사 문제가 빠진 경우가 없다. 1600만명 임금근로자의 평균소득이 3200만원에 불과한데, 그 몇 배의 사외이사 보수를 받으면서 거수기 노릇 하는 걸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는 게 교수들이다. 그러니 20년 동안 강의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거대 국책은행의 CEO가 되어 나라를 망친다. 나도 교수지만, 정말로 낯 뜨겁다. 현직 변호사가 미래의 변호사인 후배 판사·검사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빌미로 고액 수임료 사건을 싹쓸이하는 전관예우 관행의 법조계도, 영업현금흐름의 추정치와 실제치가 조 단위로 괴리되는 등 부실과 분식의 징후가 농후했음에도 수주산업의 특수성만을 강변해온 회계업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의 교수·변호사·회계사들은 부끄러움을 잊었다. 이들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

법경제학자 블랙(Bernard Black)의 글이 생각난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사외이사·감사위원 등의 내부 감시기구 → 법무법인·회계법인·신용평가사 등의 정보생산기구 → 거래소 및 직종별 협회 등의 자율규제기구 → 금융위·공정위 등의 시장감독기구 → 검찰·법원 등의 사법기구’로 이어지는 긴 연쇄고리의 제도 인프라를 정비해야 하는데, “이를 단기간 내에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우 기분 나빠했으나, 요즘은 적극 동의한다. 이 연쇄고리 곳곳에 부끄러움을 잊은 교수·변호사·회계사들이 관여하는데, 뭔들 제대로 작동하겠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개개인의 전문가적 직업윤리를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 과제이겠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착하게 살자’는 도덕적 계몽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경제학자의 신념이다. 전문가의 행동을 제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동료들의 압력’(peer pressure)이다. 전문가가 한 일은 같은 전공의 동료만이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의를 일으킨 교수·변호사·회계사는 소수일 뿐이라는 항변은 알량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동료의 비행에 침묵하는 전문가(단체)는 그 자체로 공범이라는 인식 하에 자율규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변호사협회는 고위 법조인의 경우 퇴임 후 일정 기간은 변호사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내규를 시행해야 한다. 또한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회장 등 고위 임원이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이해충돌 문제부터 해소해야 한다.

개개인의 직업윤리나 동료들의 압력으로 개선되지 않을 때는 강행법규(hard law)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엔론·월드콤 등의 대형 회계부정 사건 후 제정된 미국 회계제도개혁법(Sarvanes-Oxley Act)의 핵심은 자율규제를 공적규제로 전환한 것이었다. 물론 강행법규에는 많은 규제비용이 수반된다. 그러나 자율규제 실패에 따른 더 큰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의 교수·변호사·회계사들도 마찬가지다. 쏟아지는 비난에 억울해하지 말고, 김영란법 시행에 불평하지 말라. 자업자득이다. 전문가 자격증이 특권의 징표는 아니지 않은가.

* 이 글은 경향신문 8월 23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