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를 어찌할꼬?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07-12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었다. 지난 3월, 총선을 앞두고 부실기업과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창하게 운을 띄운 ‘한국판 양적완화’가 이런저런 굴곡을 거쳐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을 지원하는 것으로, 그것도 보통주가 아닌 코코본드(특정 사유 발생 시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상각되는 채권)를 인수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게다가 한국은행이 직접 인수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은행·자산관리공사·신용보증기금까지 끌어들여 대출·특수목적회사·지급보증 등으로 얼기설기 엮은 이상한 구조를 만들었다. 꼴이 말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 원칙적 해결 방법은 ‘없던 일’로 하는 것이다.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은 응당 재정이 맡아야 하고, 5조~8조원 정도의 자금이라면 올해 추경을 편성하거나 또는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면 된다. 그러면 깨끗하다.

그러나 진도가 너무 나갔다. 6월8일 ‘관계기관합동’ 명의로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 설립 계획이 공식 발표되었고, 7월1일에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를 의결했다. 즉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미 강을 건넜다.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야당과 시민단체가 결말을 알 수 없는 정치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거기서 이긴다 한들, 그 결과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양대 국가기관의 알량한 권위마저 깔아뭉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이 장기침체 국면에 대처하는 합리적 방안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1997년 상황을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일본의 노무라증권이 “지금 당장 한국을 탈출하라”(Get out of Korea, now)는 참담한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한국의 위기는, 문제가 많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해결책을 선택하고 실행할 정치적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붕괴되었다는 데 있다’는 것이 그 보고서의 요지다.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 아닌가? 원칙적 정답을 고집하다가 아무런 결정도 못 내리고 시간만 죽이는 것이 진짜 위기의 징후 아닌가? 차선의 현실적 대안을 찾는 것이 침몰하는 한국경제를 구하는 보다 안전한 방법일 수 있다고 본다.

현 상황을 찬찬히 다시 살펴보자. 한국은행의 팔을 비트는 ‘꼼수’를 생각했던 경제관료들의 애초 의도는 보통주 출자였을 것이다. 한국은행이 끝까지 버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밀고 당기는 가운데 코코본드 인수로 낙착되었고, 그 순간 이 꼼수의 효용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2008년 위기 이후 은행건전성 감독의 국제기준으로 바젤Ⅲ가 도입·시행되면서, 기본자본과 보완자본을 합쳐서 8% 비율을 맞추는 것은 정말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대형은행은 기본자본, 그중에서도 보통주 자본으로만 그 정도 비율을 맞추어야 한다. 즉 정부가 재정으로 국책은행의 보통주 증자를 하는 것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고, 한국은행의 코코본드 인수는 유사시 응급수단 정도의 의미밖에 안된다. 즉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마지막 허들은, 코코본드 인수가 한국은행법 및 은행법에 저촉된다는 주장이다. 사실 근거규정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온갖 금융공기업들을 끌어들인 이상한 구조를 만든 것이다. 반면, 명백한 불법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한국은행법 관련 이슈의 경우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로도 보완 내지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의 근원적 하자인지는 의문이다. 대주주 신용공여한도 위반 등 은행법 관련 이슈의 경우, 이런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정부 산하 300여개의 공공기관에 여신을 제공한 모든 은행들이 법 위반이 되는 난감한 결론이 도출된다. 이건 곤란하다.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데 투명한 절차도, 책임지는 주체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비록 늦었지만, 적정한 통제장치를 갖추는 정치적 결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책은행자본확충펀드를 ‘공적자금관리 특별법’상의 공적자금으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 이 법의 제13조 최소비용의 원칙 및 제14조 공평한 손실분담의 원칙이 적용되고, 제15조 국회의 통제와 제16조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된다. 이 정도면 관료들의 오남용 소지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선례를 통해 관료들이 또 다른 꼼수를 찾는 유인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내 칼럼에 의문을 제기한다. 현실 타협적이라는 지적이다. 맞다. 나도 안다. 그러나 결과를 알 수 없는 원칙적 정답보다는 예측가능한 차선의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1997년 위기가 준 교훈이다. 그래서 이렇게 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7월 1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