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친(親)시장인가 친(親)기업인가

장하성 | 경제개혁연구소 이사장, 고려대 경영대학장   작성일시: 작성일2009-08-25   
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서 경쟁을 통해서 가격과 수량을 정하는 곳이다. 생산에 필요한 요소인 노동·자본·자원의 요소시장과 생산의 결과로 얻어진 제품을 수요자와 공급자가 거래를 하는 곳이 제품시장이다. 소비자·노동자·투자자의 세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는 개인은 요소시장에서는 공급자이고 제품시장에서는 수요자이다. 반면에 기업은 요소시장에서는 수요자이고, 제품시장에서는 공급자이다.

우리가 시장경제를 국가체제로 선택한 이유는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로운 선택으로 공정한 경쟁을 하는 시장체제가 가장 효율적인 생산과 배분을 이루어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시장 정책이라면, 수요자든 공급자든 누구나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시장에서의 경쟁이 모든 참여자에게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때문에 친시장 정책은 친기업만이 아니고, 친소비자이고 친노동자이며 동시에 친투자자여야 한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원천적으로 공정하기 어렵다. 개인의 경우에 타고난 재능과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고 기업의 경우에도 기존 시장에서의 지배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이 친시장적이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공정할 수 없는 경쟁의 출발선에서 기득권자들이 새로운 경쟁자의 도전을 막는 행위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이다. 동시에 경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출발선에서의 우위적 힘을 가진 기득권자들이 경쟁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경쟁이 원천적으로 공정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시장경제가 효율성을 내는 것은 출발선에서의 순위가 결승점에서의 순위와 달라지게 하는 경쟁의 속성에 있다.

출발선에서의 1등이 결승점에서도 1등이라면 경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득권을 가진 자가 경쟁을 지배하는 시장은 결국은 소수의 손에 의해서 장악되어 시장경제 자체가 쇠퇴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새로운 경쟁의 도전자가 나와서 시장이 진화되도록 돕는 것이 친시장 정책이다. 또한 시장만능주의를 경계하는 것도 친시장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다. 복지·교육·의료·문화 등과 같이 시장의 기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경쟁과 효율만을 강요한다면, 시장 자체가 실패할 뿐 아니라 시장경제체제 자체가 부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시장은 친기업이며, 마찬가지로 친시장은 친노동이다. 그러나 '친'이라는 말이 특정 시장참여자만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이라면, 친기업이나 친노동은 오히려 반시장이 될 수 있다. 그러한 배려가 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하고 공정한 경쟁을 해치거나, 다른 시장참여자의 권익을 침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친노동과 친기업이 반시장적인 사례는 수없이 많다. 조합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중소 하청업체와 같은 다른 이해당사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대기업 노조의 일방적 투쟁이나, 계열사와의 부당거래와 세습경영을 일삼는 재벌경영 모두가 반경쟁적인 것이기 때문에 반시장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정주영, 이병철과 같은 창업의 신화가 끊긴 지 오래되었다. 중소기업 사이에는 오히려 삼성·현대·엘지에 도전하면 망한다는 역신화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오늘의 기업구조이다. 그리고 선진국과는 달리 재벌 2세·3세들이 부자의 반열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귀족노조라고 조롱당하는 대기업 노조에는 더 이상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절규가 아닌 밥그릇 싸움만이 판을 친다. 청년실업이 고착화되고 비정규직이 오히려 다수화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비정규직도 모자라서 젊은이들이 인턴이라는 1회용 시한부 일자리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노동구조이다.

우리 사회가 기업이건 노동이건 출발선에서의 1등이 결승점에서도 1등이 되는 희망 없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이명박 정부가 추구해야 할 정책은 친기업이 아니다. 누구나 경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고 기득권과 관계없이 모두가 공정한 경쟁을 하고 시장이 작동되지 않는 곳에 정부의 손길이 미치는 친시장정책이다. 기득권이 공고화된 재벌구조와 노동구조를 개혁하여, 중소기업이 재벌기업과 경쟁하여 새로운 창업신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창업기업에서 역량 있는 젊은이들이 인턴이나 비정규직이 아닌 새로운 정규직 일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것이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 이 글은 조선일보(2009년 8월 25일)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