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경제수석과 이종걸 원내대표의 착각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01-11   

새해 벽두부터 정부와 야당 사이에 경제민주화의 성과를 두고 날선 공방이 오갔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새해 첫 월례브리핑에서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다고 자화자찬하자,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부가 또 다른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고 맹비난했고, 곧바로 공정위가 “경제민주화는 계속 진전되고 있다”며 적극 항변한 것이다. 이쯤 되면 같은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치 공방이야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일도 아니다. 이처럼 딴소리를 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수단에 대해 양쪽 모두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부는 물론 야당의 책임도 없지 않다.


지난주에 발표된 경제개혁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9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가 얼마나 진전되었다고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 답변이 78.4%로 압도적이었고, 긍정적 응답은 13.7%에 불과했다. 따라서 안종범 수석의 자화자찬은 국민정서와는 동떨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부정적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물어보니, 정부 43.2%, 야당 21.9%, 여당 15.1% 순이었다. 계층별로 그 순위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응답자 전체적으로는 (정부 다음으로) 야당의 책임이 여당보다 더 크다고 보았으니, 이종걸 원내대표도 그렇게 큰소리칠 입장만은 아닌 것이다.


정부와 야당을 모두 질타하는 결과가 나온 셈인데, 이를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유권자는 현명하다’는 정치 격언을 전제로 한 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우선, 안종범 수석의 평가는 입법적 성과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2012년 대선공약 중에서 공정거래법과 관련된 것은 대부분 완료되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불공정 하도급거래 규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안종범 수석이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은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공약이 공정거래법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이중대표소송제도 도입, 연기금의 의결권 강화 등 상법·금융법 등을 총망라했는데, 여기서는 사실상 아무런 진전이 없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고가매입,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 롯데그룹의 형제간 분쟁 등 연이은 사태에서 드러난 재벌개혁의 핵심과제가 상법·금융법 개정을 통해 시장의 압력을 제고하는 것이었음을 감안하면, 공정거래법에 한정된 성과를 근거로 한 자화자찬은 그야말로 아전인수다. 또한 경제민주화의 궁극적 목표가 하도급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1997년 및 2008년보다 더 어렵다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안종범 수석의 자화자찬은 국민정서를 몰라도 너무 모른 것이었다.


다른 한편, 이종걸 원내대표도 착각해서는 안된다. 경제민주화가 진전되지 못한 책임이 야당에도 없지 않으며, 심지어 여당보다도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를 선명성과 투쟁성이 약했다는 뜻으로만 해석하지는 말기 바란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 반대다. 화석화된 정부 비판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는 없다.


예컨대 지난번 칼럼에서는 일명 원샷법에 대한 야당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 다른 예로서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야당의 경직적 태도를 들 수 있다. 야당은 ‘신규 순환출자’만을 금지한 대통령 공약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기존 순환출자’까지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경제개혁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61개 대기업집단 중 순환출자가 있는 그룹은 8개에 불과하고, 그중에서도 순환출자가 총수의 지배권 유지에 핵심 역할을 하는 그룹은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현대산업개발 등 3개뿐이다. 즉 기존 순환출자 해소가 경제민주화의 최우선 과제라고 볼 수도 없다. 또한 지난 연말 삼성·현대자동차 그룹에 대한 공정위의 시정조치에서 보듯이, 승계나 사업재편을 위해 순환출자 고리에 있는 계열사들을 합병하면 신규 순환출자 금지 규제에 저촉되어 6개월 내에 해소해야 한다. 즉 기존 순환출자 해소도 시간문제일 뿐이니, 법적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지금 야당에 부족한 것은 선명성이 아니라 실사구시의 자세다. 당명 변경과 인재 영입만이 아니라 슬로건과 정책의 혁신도 필요하다. ‘진영 내의 안전한 정답’에만 머물러서는 선거에서 이길 수도 없고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도 없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월 13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