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헤븐 대한민국’으로

장하성 | 고려대 경영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6-01-12   

20대와 30대의 젊은 세대들이 한국의 현실을 ‘헬조선’, 즉 ‘지옥 같은 조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신을 착취하는 최저임금 이하의 일자리라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며 ‘열정노동’이라고 자기기만에 취해 있었다. 자신들을 억압하는 임금과 고용의 극심한 격차도 각자의 노력과 능력에 따른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나는 차별에 찬성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 기성세대가 만들어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구조에 순응해 왔던 20대와 30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헬조선’ 외침에서 한국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2030 세대가 희망이 없는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정의롭지 못한 체제에 순응하면서 아프다고 징징대며 자기계발이나 힐링 따위에만 몰입한다면 한국은 미래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부모세대보다 더 못살게 되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다. 이제 그들은 늦게나마 현실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고, 그 원인이 금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구조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사실에서 희망의 씨앗을 본다.  


일부 기성세대들은 청년세대들이 자신의 조국을 ‘지옥’이라고 하고, 그것도 대한민국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못마땅해 한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외치는 헬조선과 수저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두 가지 기사가 있었다.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각료회의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룰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금융계에서 토종 한국인으로 성공한 ‘멘토’가 ‘흙수저 탓만 하는’ 젊은 세대에게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해 보았느냐”고 물었다는 기사다.  


두 사람 모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젊었을 때에는 취업은 당연한 것이었고 비정규직이나 인턴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임금 격차도 매우 적었고, 근면성을 발휘하면 대통령이나 세계적 금융가는 아니더라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에게는 하늘이 감동할 만큼 노력해도 꿈의 직장은 로또일 뿐이며, 절대다수는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과 출산까지도 포기하고 스스로 쓸모 없는 잉여라고 자조하고 있다. 여기에 ‘노력하면 된다’며 ‘멘토질’을 하는 기성세대는 내 자식의 취직 청탁을 할지언정 대부분의 남의 자식들이 직면하고 있는 헬조선을 이해할 리 없다.  


헬조선 수저론이 담고 있는 핵심은 ‘한국은 노력한다고 되는 나라가 아니다’란 말이다. 그렇기에 공고한 기득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희망이 없다는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바꾸고 싶지도 않다. 미래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엇갈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평가다. 한국갤럽의 1월 조사에 따르면 20대와 30대는 10명 중에 각각 7명과 8명이 “잘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50대와 60대 이상은 10명 중에 각각 5명과 8명이 “잘하고 있다”고 한다. 세대 간 평가의 차이는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갈림선이었던 호남과 영남의 지역 간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  


두 세대가 같은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가를 의심케 할 정도로 같은 세상을 정반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또 다른 한국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헬조선의 당사자인 2030세대가 스스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나만은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는 최면에서 깨어나 우리 모두가 서로를 밀어내야 하는 바늘구멍 경쟁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같은 노동을 하면 같은 임금을 달라고 하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임금을 요구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비정규직이나 인턴을 없애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내 아이만 당첨되는 요행을 바라지 말고 우리 아이들 모두가 국공립 유치원과 보육원에서 자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옆집 아이가 하니 내 아이도 안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모든 학부모가 함께 선행학습을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법으로 금지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거창한 구호나 세대정신도 필요 없다. 내가 고통받고 있는 내 자신의 현실 문제를 바꾸는 행동으로 충분하다. 헬조선의 깨달음을 세상을 바꾸는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다. 4월 총선과 내년 대선이다. 정치 말고는 세상을 바꿀 방법이 없다. 한 번의 투표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2030 세대가 ‘헬조선’의 현실을 정치적 이슈로 만들고 투표에 참여한다면 세상은 바뀐다. 정치인들은 표를 먹고 산다. 고통받는 이들이 행동하면 ‘헬조선’을 ‘헤븐 대한민국’으로 바꿀 수 있다. 헬조선으로 분노한 2030이여, 이제 행동하자. 


* 이 글은 중앙일보 1월 12일자에 실린 칼럼으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