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촉법 기억과 원샷법 전망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5-12-23   

쟁점법안 처리가 지연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언급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이에 정부·여당은 ‘5분대기조’ 상태에 돌입했고, 야당은 ‘사춘기 아이’처럼 엇나가고 있다. 쟁점법안 중 일명 원샷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에 대해서만 살펴본다.


원샷법 논란을 지켜보자니 2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외촉법(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이 쟁점이었는데, 외국기업과 합작을 하는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 규제를 일부 완화해주는 내용이었다. 그때도 대통령은 ‘국회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맹비난했고, 정부·여당은 담임선생님에게 야단맞은 학생처럼 쩔쩔맸고, 야당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킬 거라며 반발했다. 당시 2014년 예산안 처리가 연계되어 있었는데, 외촉법 논란이 격화되면서 새해 자정을 넘겨서야 가까스로 본회의를 통과했고,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부예산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그 난리를 치른 개정 외촉법의 효과는 어떠한가? 대통령의 말처럼 외국기업 합작사업이 줄을 이어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는가? 아니다. 원래 이 법의 적용대상은 두 건뿐이었는데, 그나마도 GS그룹은 사업추진을 접었고, SK그룹이 지은 완전자동화된 석유화학 공장의 상시고용 인원은 50명뿐이다. 또한 향후에도 이 예외조항을 적용할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 법이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무너뜨리고 경제력 집중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던 야당의 주장 역시 기우에 그쳤다. 결국 대통령도, 정부·여당도, 야당도 ‘뻥을 친’ 셈인데, 책임을 묻기는커녕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다.


원샷법은 어떠한가? 논란의 진행 과정도 외촉법과 판박이고, 결과도 유사할 것이다. ‘경제활성화’와 ‘재벌특혜’라는 양 극단의 논리로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지만, 이 법 하나로 죽어가는 한국경제가 살아날 리도 없고, 경영권 승계가 봇물 터지듯 진행될 리도 없다. 원샷법이 어떻게 처리되든 조금만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똑같은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이게 위기 아닌가? 경제위기의 징후는 경제지표로만 판단할 일이 아니다. 문제를 인지하고 그 해결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정치적 의사결정 기제가 붕괴된 것이 곧 위기다. 1997년과 같은 급격한 붕괴든 일본식의 장기침체든 간에, 경제위기는 곧 정치위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미 한국은 경제위기에 들어섰다. 그리고 대통령과 정부·여당과 야당은 모두 위기의 공범이다.


외람되지만, 야당에 충고 한마디 하겠다. 원샷법을 무산시키는 것으로 ‘선명야당’을 자부하지는 말기 바란다. 원샷법의 독소조항은 이미 대부분 제거되었다. 애초에 재계가 로비를 시작할 때는 우려할 만한 내용이 많았지만, 야당만이 아니라 법무부·공정위 등의 관련 정부부처도 과도한 규제완화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고 반영되었다. 또한 지난 11월 공청회 때 경제개혁연대의 멤버가 진술인으로 참여하여 제시한 보완대책도 대부분 반영된 걸로 알고 있다.


경제정책의 핵심은 우선순위의 합리적 조정이다. 지금은 구조조정이 한국경제의 최우선 과제다. 아직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가지는 않은, 그렇지만 잠재적 부실요인을 안고 있는 (대)기업들의 선제적 구조조정이 급선무다. 원샷법 하나로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야당이 훼방꾼을 자처할 이유는 없다. 그건 박근혜 대통령의 총선 프레임에 걸려드는 첩경이다.


그래도 우려가 제기된다. 다른 재벌은 몰라도, 삼성만은 다르다는 우려다. 예컨대, 시가총액 200조원의 삼성전자와 20조원의 삼성SDS를 주주총회 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소규모합병’하여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을 높일 거라는 시나리오다. 과연 그럴까? 원샷법은 소규모합병의 요건을 완화(10%→20%)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반대주주의 비율은 오히려 강화(20%→10%)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이르는 글로벌기업으로, 이 시나리오는 실현되기 어렵다. 설사 소규모합병이 성사되더라도,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 2조원으로는 삼성전자 지분 1%를 취득하는 것에 불과하며, 합병비율을 조정하는 꼼수를 부려도 승계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이런 꼼수는 이 부회장에게 또 다른 멍에를 지우는 것이다. 삼성이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그거다.


일개 헤지펀드가 삼성을 공황상태로 몰고 갔는데, 일국의 제1야당이 그렇게도 자신이 없는가? 그러고도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가? 삼성을 개혁하려면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진영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안전한 답’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도 없고, 삼성을 개혁할 수도 없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2월 23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