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해봤어?” 이후의 기업가정신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15-12-05   

지난주에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범현대가 차원의 기념행사가 열렸다. 도처에 경제위기 징후가 나타나는 현 상황에서 “이봐, 해봤어?”로 요약되는 그의 도전정신이 새삼 큰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겨울철 부산 유엔군 묘지에 보리를 심어 푸르게 단장한 일, 500원 지폐의 거북선 그림으로 차관을 얻어 조선소 도크와 배를 동시에 만든 일,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 때 구조물을 뗏목에 실어 태평양·인도양을 건넌 일, 독자엔진 개발을 시작으로 제3세계 유일의 풀 라인업 자동차회사를 세운 일,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서산 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완성한 일 등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한국경제론을 강의할 때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자서전을 꼭 읽어보라고 학생들에게 권한다. 단, 조건이 있다. 21세기 한국경제가 요구하는 기업가정신을 다시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100년 전 슘페터는 자본주의 발전의 동학을 설명한 명저 <경제발전의 이론>을 남겼다. 이 책의 2장은 ‘창조적 파괴의 혁신’을 수행하는 기업가(entrepreneur)가 자본주의의 주역임을 웅변하고 있다. 이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3장에서 슘페터가 은행가(banker)의 중요성을 역설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업가가 가진 혁신의 잠재성을 포착·선별·지원하는 은행가의 역할 말이다. 은행가가 없으면 기업가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어렵다. 은행가의 존재로 말미암아 기업가는, 독점과 착취의 결과물이 아닌, 혁신의 대가로서 초과이윤을 얻는다. 자본주의의 동태적 발전은 기업가와 은행가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슘페터가 말한 은행가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한다.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는 시장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가 은행가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1960년대 이래 30여년 동안 한국이 기록한 눈부신 경제성장이 대표적 사례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 리더십과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영 리더십이 짝꿍이 되어 한 시대를 만들어갔다. 정경유착과 노조탄압의 어두운 면을 갖고 있었지만, 고도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놀라운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그 성공의 조건을 파괴한다. 발전국가의 성공은 제2의 박정희·정주영이 나타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한국경제는 기업가와 은행가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여년간 실패를 거듭했다. 발전국가를 대체할 진정한 은행가의 출현, 즉 금융시장의 발전은 계속 지체되었다. 그 결과가 기업가정신의 소멸이고 다이내믹 코리아의 실종이다.


지금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재벌 3세들은 스스로의 성과를 통해 권위와 존경을 축적할 기회 자체를 갖지 못했다. 온실 속의 화초다. 과거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기업은 커지고 복잡해졌으니,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커녕 경영상황을 파악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더구나 추격자(fast follower) 단계를 지나 어느덧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에 둔 개척자(first mover)가 된 상황에서 도전은 성공에 못지않은 실패의 확률을 안고 있다. 3세들은 움츠러들었고, 가신들은 3세들을 시장과 사회로부터 격리했다. 재벌의 현주소를 ‘무능한 3세’와 ‘정보를 왜곡하는 가신들’로 정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만간 재벌개혁운동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개혁을 완수해서가 아니라, 개혁대상이 망해서 없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삼성·현대차·LG 등 4대 그룹과 그로부터 계열분리된 몇몇 친족그룹을 제외하면, 상당수 재벌들이 심각한 부실징후를 보이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30대 재벌의 절반이 곧바로 해체되었다면,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에는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부실이 만성화·악성화된 차이는 있지만 결과는 유사하리라고 본다. 3세 승계를 완성하기도 전에 망할 재벌들이 적지 않다.


대안은 뭔가? 재벌체제에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미국식의 전문경영인체제가 곧바로 작동할 거라고 보지도 않는다. 과도기적 중간 형태는 없는가? 총수의 아들이라고 꼭 CEO를 해야 하는가? 지주회사의 이사회 의장은 어떤가? 성과를 평가하고 위험을 관리하며, 내부를 통합하고 외부와 소통하는 조정자(coordinator)로서 이사회 의장의 역할이 직접 전략적 경영판단을 내리는 CEO에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은가? 그게 본인과 그룹과 국민경제를 위해 더 낫지 않을까? 3세들이 스스로 변하지는 않을 터이니,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재벌개혁운동을 계속해야겠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2월 2일자에 실린 글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