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특검 1년, 과연 삼성은 달라졌는가

김상조 |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09-04-17   
작년 4월 17일 삼성특검이 비자금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곧이어 4월 22일 삼성그룹이 경영혁신안을 발표했다. 이제 1년이 지났다. 물론 그 이후로도 1, 2심 무죄판결을 놓고 말들이 많았고, 우여곡절 끝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대법원 재판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삼성 비자금 사건은 어느덧 까마득히 먼 옛날 일로 우리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과연 그래도 되는 건가?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17호실의 기억

2007년 10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기자회견을 통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시작된 이후 필자도 덩달아 바빠졌다. 솔직히 말해, 태어나서 그렇게 바빴던 적이 없었다. 다음날 발표할 자료를 마무리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 수많은 일들 중에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 있는 것이 하나 있다. 1심 재판의 마지막 심리일인 작년 7월 1일, 민병훈 판사(지금은 변호사 개업)가 필자와 곽노현 방송대 교수, 손병두 서강대 총장,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 사장 등을 양형증인으로 불렀다. 특검이 거부했는데도 판사가 직권으로 증인 채택을 했으니, 그도 흔치 않은 일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장 큰 법정이라는 서관 417호실. 기자들이 앉은 방청석의 맨앞 두 줄을 제외하고 나머지 100여 좌석은 모두 삼성그룹의 사장급 이상 고위임원들로 꽉 채워졌다. 이런 기회 아니면 다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이재용 전무 등에 대한 증인 심문, 그리고 이건희 회장 등에 대한 피고인 심문이 진행되었고, 드디어 마지막으로 양형증인들의 증언 차례. 필자가 맨 먼저 불려 나갔다.

삼성 변호인단이 첫 심리 때 화려한 파워포인트 자료로 변론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기에, 필자도 증언 자료를 파워포인트로 준비했다. 그런데 법정의 구조상 필자가 증인석에 앉아 증언을 하면 빔 포인터의 레이저 광선이 바로 이건희 회장 머리 위로 지나갈 상황이라, 재판장의 허가를 얻어 피고석 앞으로 나가서 증언을 했다. 그렇게 해서 장장 1시간 반 동안 필자는 이건희 회장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슬라이드 26장짜리 자료를 설명했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필자를 바라보던 이건희 회장의 눈길을….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눈빛이더니 나중에는 ‘세상에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이건희 회장으로서는 평생토록 자신의 면전에서 그렇게 떠드는 미친놈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순간 절감했다. 이게 바로 삼성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이건희 회장이 보기에, 필자는 경험도 없고 생각도 삐뚤어진, 한낱 젖비린내 나는 놈이었음이 틀림없다. 애써 부정하지 않겠다. 필자 스스로도 필자의 생각 전부가 옳다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사람 사는 일에, 기업을 경영하는 일에, 경제가 돌아가는 일에, 100% 옳고 100% 틀린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두 가지 상반된 평가 중에서 그 어두운 면에 대한 평가를 필자가 대변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어찌되었든 우리 사회 구성원의 상당부분이 필자의 말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 아닌가? 이건희 회장이 필자의 말을 수용하지는 못하더라도, 필자가 대변했던 인식이 우리 사회에 현실로서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필자의 증언 내용 중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면, 그건 필자의 책임이다. 그러나 필자의 말이 ‘금시초문’이었다면, 그건 이건희 회장의 책임이다. 그건 이건희 회장 자신과 삼성그룹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 상당부분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다는 의미고, 이건희 회장 스스로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필자가 이건희 회장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혹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때는 필자를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인 한두 미친놈’으로 보지 말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 중의 하나’로 바라봐주길 바란다. 열린 공간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것이 삼성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필자의 확신이다.

경영혁신안 발표, 그 후 1년

이 글에서 필자는 이건희 회장의 직함을 계속 ‘회장’이라고 썼다. 의도적이다. 작년 4월 22일 발표된 삼성그룹의 경영혁신안에 따라 이건희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룹 회장이라는 직함 자체가 우리나라 법 어디에도 없는 개념이니, 권한만 있고 책임이 없는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게 실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계속 회장이라고 썼다.

이건희 회장의 퇴진이 의미를 가지려면, 삼성그룹의 의사결정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그 증거를 찾기는 어려웠다.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략기획실 임원들이 각 계열사로 돌아갔다고 하지만, 그 분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심지어 옛날에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어느 기자가 전직 전략기획실 임원들의 계열사 배치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알만 한 분이 왜 이러시냐. 아마추어처럼…’라는 답변만 돌아 왔단다.

전략기획실이 해체되고,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투자조정위원회·브랜드관리위원회를 설치하여 각 계열사의 의사결정을 조정한다고 했다. 올해 초에는 사장단 인사를 위해 인사위원회를 추가로 설치했다. 그런데 참 얄궂다. 사장단협의회 및 산하 위원회는 가이드라인만 정하고 실제 의사결정은 각 계열사가 한다는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는가? 사장단협의회나 각 위원회가 실질적인 의사결정 주체라면, 이 역시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전략기획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반대로 사장단협의회와 산하 위원회도 허수아비라면, 즉 실제 의사결정은 커튼 뒤의 그 누군가가 하고 있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필자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주장한 적이 없다. 진짜다. 다수의 기업을 공통의 지배권 하에서 통할경영하는 그룹조직은 단독기업이 흉내 낼 수 없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걸 부정한다면, 경제학자가 아니다. 문제는, 삼성을 비롯한 현재의 재벌체제에서는 그룹경영에 따른 권한과 책임이 크게 괴리되어 있다는 데 있다. 그룹 회장과 전략기획실이 그러한 문제의 상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경영혁신안 발표 이후 삼성그룹의 의사결정구조는 지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 의사결정을 하고 누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지 외부 사람은 물론 삼성 내부자들도 헷갈려 하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의사결정구조로는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금융위기를 핑계로 과거의 의사결정구조로 슬그머니 되돌아가지 않을까 더 걱정이다.

삼성그룹이 이런 내외부의 우려를 확실하게 불식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국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른바 MB쟁점법안 중의 하나인 (금융)지주회사 제도에서의 금산분리 완화 방안도 뭐가 못마땅했는지 삼성그룹이 추가 규제완화를 위해 정부와 여당에 로비를 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들리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필자가 보기엔, 지금 국회에 상정된 개정안만으로도 국민경제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만큼 충분히 위험한 것인데 말이다. 더구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반성으로 세계 각국이 금융규제감독을 한층 더 강화하는 마당에….

한편, 경영혁신안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은 ‘실명전환 후 좋은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공시 내용을 다 합쳐보아도, 이건희 회장의 실명전환 주식가액은 삼성특검이 밝히 차명재산 총액에 최소 3,000억원에서 최대 6,000억원 정도 모자란다. 어찌 된 일인지 질의했으나, 가타부타 답이 없다. 실명전환 재산을 좋은 일에 쓰겠다는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물었으나, 이 역시 감감무소식이다(2009.3.9일자 경제개혁연대의 보도자료 참조). 이젠 아예 대꾸도 안할 작정인 모양이다.

삼성그룹의 경영혁신안이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에는 1년은 너무 짧을지도 모르겠다. 삼성그룹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1년이 아니라 몇 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삼성그룹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그 어떤 긍정적 신호도 발견할 수 없다. 삼성그룹은 진정 변화의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는가? 안타깝다.

김용철 변호사에게 미안하다

이건희 회장은 1, 2심에서 배임죄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솔직히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1, 2심 무죄 판결의 논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주식의 저가발행은 주주들 사이의 민사사건일 뿐이니, 배임죄 혐의로 형사법원에 들고 오지 말라’는 것이다. 곡학아세의 전형이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 199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사건, 이걸 민사적으로 해결할 수단이 있었다면, 10년이 넘도록 검찰과 형사법원에 들락거리지도 않았다. 두 회사 모두 비상장회사다. 즉 민사소송(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외부 주주가 없다. 비상장회사의 상장 모회사 주주들이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중대표소송)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현행 상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럼 상법 개정을 통해 이중대표소송 제도를 성문규정화하자는 요구에 대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손 사레를 치고 있다. 민사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민사적으로 해결하라는 말인가? 이는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민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어라’고 한 프랑스대혁명 당시의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과 같다.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법언이 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자신의 권리를 지킬 합법적 수단 자체가 없는 사람에게 법은 뭐라고 할 건가? ‘억울하겠지만, 할 수 없다. 인생이 원래 복불복 아닌가’라고 할 텐가? 이게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판사, 검사, 변호사가 할 소린가? 이게 법치주의이고, 이게 법적 정의인가?

1심 판결 후에 어느 언론사 인터뷰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교수에게 미안하다’고 했단다. 괜히 자기가 나서서 이건희 회장에게 면죄부만 주고, 경제개혁연대의 10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김용철 변호사가 미안해 할 것이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가 김용철 변호사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과 타협할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는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양심고백’을 했다. 그 결과 김용철 변호사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그리고 지금은 호구지책을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우리에게 제공한 소중한 기회를 우리 스스로가 걷어찼다. 국민 개개인이 불법행위의 도덕적 불감증에서 깨어날 기회; 삼성그룹이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기회; 건전한 시장경제질서를 정립할 기회;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를 세울 수 있는 기회; 이 모든 기회를 우리 스스로 내버렸다. 그래서 김용철 변호사에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2009년 4월 17일)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