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증권을 허용하면 민간투자가 활성화된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 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작성일시: 작성일2009-07-24   

7 2일 정부는 제3차 민관합동회의를 개최하고 기업체 대표들과 투자촉진 방안을 논의했다. 여러 가지 투자촉진 방안들이 논의되었는데 필자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끈 대목은 설비투자 촉진을 위해 독약증권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보도 자료를 통해 유추해본 정부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은 주주권한이 강화되고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면서 현금자산을 과다하게 보유하거나 이를 일부 비생산적인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고 있는데 만약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허용해주면 쌓여 있는 현금자산이 설비투자에 활용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을 위해 지푸라기라고 잡겠다는 정부의 안타까운 심정을 읽을 수는 있지만 잘못된 현실진단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즉각 철회되어야 할 정책처방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처방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잘못된 현실진단에 입각하고 있다

먼저,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주권한 강화 또는 경영권 위협 때문에 현금자산을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실증적인 뒷받침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이를 부정하는 실증분석결과들만 있을 뿐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현금자산비율의 단순평균은 위기 이후 전혀 증가하지 않았고, 그 중위값은 위기 이후 오히려 감소하였다. 소수의 거대기업들이 현금자산을 늘리면서 현금자산비율의 가중평균값만 8%에서 12%로 늘었을 뿐이다. , 동 연구에 따르면 현금자산 보유가 외환위기 이후 증가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실물투자의 불확실성 증대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 3% 수준이던 영업이익률의 표준편차가 위기 이후에는 거의 두 배인 6%에 육박하게 되었고 계량분석결과 영업이익률의 표준편차가 외환위기 이후의 현금자산 증가를 대부분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Bates, Kahle, and Stulz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기업들의 평균 현금자산비율은 1980년의 10%에서 2004년의 24%로 급증했으며 이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영업이익률의 표준편차로 대변되는 실물투자의 불확실성 증대이다. 독약증권 도입이 자유로는 미국기업들에서도 이러한 분석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독약증권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허용해 주더라도 경영상의 불확실성이 줄어들지 않는 한 현재의 높은 현금자산비율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정부는 설비투자가 부진한 구조적인 요인에 주주권한 강화 또는 경영권 위협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 또한 실증적인 뒷받침이 전혀 없다. 외국인 주식보유비중을 주주권한 또는 경영권 위협의 대용변수로 사용한 한국금융연구원, 한국증권연구원, 그리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실증분석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주식보유비중은 기업의 설비투자에 전혀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한국개발연구원의 또 다른 연구결과는 앞서 살펴본 실물투자의 불확실성 증대가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설비투자 감소의 가장 중요한 원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정부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외환위기 이후 계속해서 부진했던 것처럼 진단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또 다른 연구결과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설비투자성향이 외환위기 직후 부채비율 축소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2003년 이후 계속해서 꾸준히 증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최근 2-3년 동안에는 높은 부채비율을 통해 무리하게 그룹을 확장시키는 과거의 잘못된 투자행태가 일부 대기업그룹들에서 나타나기까지 했다. 세계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이들 그룹들은 현재 뼈아픈 구조조정의 길을 걷고 있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현실진단이 잘못된 만큼 이에 근거한 처방은 결국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독약증권 등 경영권방어수단 허용은 결국 주주에 대한 책임경영과 무능한 경영진 퇴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기업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 어렵게 하고 결국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잘못된 처방으로 원래의 병을 고치기는커녕 또 다른 병만 키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 이 글은 2009.7.22자 매경이코노미에 게재된 것입니다.